한국일보

난국 속 야당의 길

2003-07-0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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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이 어수선하고 안보가 불안한 가운데 시중엔 이런 말이 떠다닌다. “믿을 건 미국밖엔 없다!” 북핵 위협을 막아내고 노무현 정권의 생각을 바꾸는데는 싫든 좋든 ‘엉클 샘’밖에 없다는, 약간은 자조 섞인 푸념이다. 상당수 우파들은 정치적 스펙트럼에서 야당에 기대를 건다. 왼 쪽으로만 나아가는 노 정권을 그나마 잡아두는 데 또 다른 몫을 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최근 한나라당이 새 대표를 선출하고 ‘야당다운 야당’으로 새롭게 출발하겠다는 결의를 다진 데 주목하는 이유도 그런 데 있다.

야당에 대한 한 가닥 기대는, 바꿔 말하면 집권세력에 대한 불안과 불신의 뒷면을 의미한다. 지금 우리 앞에 전개되고 있는 시국을 보라. 산업현장과 길거리는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른 각종 노조단체의 잇단 시위로 편한 날이 없다. 이로 인해 경제는 성장을 멈췄다. 각종 경제 지표는 하향하고 개인은 파산하고 외국자본은 짐을 싸고있는 가운데, 산업현장의 생산라인은 멈추기 시작했다. 장래를 약속하는 교육현장도 교사노조(전교조)의 떼거리 수업거부로 아수라장이다. 하루가 멀다 않고 유괴 강-절도 성범죄가 들끓고 있음도 나라가 변란을 맞고 있음을 반증한다. 그렇다면 노 대통령은 당연히 ‘흉악 범죄와의 전쟁’을, ‘떼거리 시위와의 전쟁’을 선포해야 함에도 ‘언론과의 전쟁’이라는 공연한 싸움을 자초하고 있다.

「노」의 이말 저말, 시국불안 진원지
안보는 어떤가. 북한의 핵 위협은 여전히 남아 있고, 그 해결을 위해 긴밀하게 협조해야 할 한-미 공조도 썩 원활해 보이지 않은데다 강력한 대북 제재의지도 없는 현 집권 당국을 국민들이 불안해하는 것은 당연한 노릇이다. 불안과 불신의 일차적 진원지는 말할 것도 없이 노무현 대통령이다. 집권 4개월을 넘긴 이 시점에서도 노 대통령은 국가 지도자로서 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그와 가족들을 둘러 싼 비리 의혹은 실체가 아직 불분명하다니 그렇다 치자. 도대체 그가 던진 한마디 한마디가 정국과 시국을 평지풍파로 몰아 넣는 진원지가 되고 있다면 이게 보통 일인가. 노조 파업에 대한 일관성 잃은 발언은 무엇이며, 분단과 공산주의의 위협 아래 있는 대한민국에서 ‘공산당 허용’ 운운은 대관절 무슨 망발인가. 이 때 이런 말, 저 때 저런 말로 갈피를 차릴 수 없게 하는 대통령의 말, 말들로 나라는 죽 끓듯 한다.


노무현 정권에 대한 따가운 비판은 결코 정치적 반대파들 입에서만 터져 나온 게 아니다. 대통령과 같은 정당의 한 국회의원은 듣기에 따라 섬뜩한 말을 던졌다. “쿠데타가 터져도 몇 번 터질 사태다.” 민주화는 이래서 좋기는 하다. 대통령을 향해 같은 집권당 의원이 맹렬한 비난을 퍼부을 수 있다는 게 그렇고, 집권자가 비리 의혹에 휩싸이고 국정을 엉망으로 만들어도 군부 쿠데타는 어림도 없다는 것 또한 민주화의 힘이라면 힘인 셈이다. 그렇기는 해도 문제는 심각하다. 무언가 돌파구가 열려야겠는데 대통령이나 그 주변 핵심들은 과오를 인정하려들지 않고 ‘남의 탓’만 하고 있다. 일부 언론과 ‘반 개혁세력’이 발목을 잡는 통에 이 모양이라고 주장한다. 무책임하고 자신 잃은 변명일 뿐이다. 집권세력들은 요즘 베스트 셀러가 된 ‘바보들만 남의 탓을 한다’라는 책이라도 한권 사서 읽어 보라. 자신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리라.

야당의 바른 길, 협조와 견제
그렇다면 이 난국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뭐니뭐니 해도 대통령이 바로 서야 한다. ‘나라 병고’를 고치려면 이것 말고는 처방이 없다. 다른 건 그 두번 째, 세번 째 처방이다. 여기서 문제의 심각성은 제기된다. 그 처방의 핵심인 대통령 자신이 도통 자기 고집이나 언행이나 생각을 고치려들지 않는 인상이 짙은 때문이다. 다시 그렇다면 이대로 주저앉아 있으란 말인가. 아니다. 그랬다가는 머지 않아 나라가 결딴 날 판이다. 이제 대통령으로 하여금 바른 선택을 하도록 국민적(여론) 압력을 행사하는 일이 시급하다. 다시 말해서 견제세력들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더욱 요청되고 있다. 바로 이 점에서 야당의 역할은 정치권의 온당한 견제를 대표한다. 법이 보장한대로, 국회가 갖는 정당한 권력 분점을 활용하라는 말이다. 집권세력은 언론과 야당의 비판과 견제를 “딴죽을 건다”는 말로 반격하고 있지만, 민주 국가에서 권력에 대한 견제는, 여론을 이끄는 언론과 이를 존중하는 정치권, 특히 야당의 당당한 몫이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비판의 선별이다. 권력자의 모든 것을 물고 늘어지라는 게 아니다. 명백하게 잘못된 것은 가차없이 용납치 않는 강력한 비판정신이 그것이다. 반면 옳은 정부정책에 대한 협조는 필수적이다. 문제는 여나 야나 모두 ‘정치적 고려’에 노예가 돼 있다는 점이다. 내년 총선 승리가 그들의 초미의 관심사다. 노 대통령이 지금처럼 죽을 쑤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총선 승리’라는 정치적 이해에 집착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야당도 권력 견제를 위한 다수당 확보라는 명분을 내걸고 총선 압승으로 내달릴 모양이지만 정도를 넘었다가는 정말 “딴지만 건다”는 여론의 질타를 면치 못할 것임도 알아차려야 한다.

따라서 견제와 협조를 어떻게 조화해 나가느냐가 새로 출범한 야당의 능력을 재는 시험대다. 요즘 시국을 보면 야당의 성공 여부가 국운과 직결돼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병렬 호’의 야당이 정당한 국사에는 협조하되 권력의 불의에 대해선 용감하게 맞서는, ‘야당다운 야당의 길’을 올바르게 걸어 나갈 지, 나라를 걱정하는 이들이 예의 주목하는 이유다.

안영모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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