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2002-12-3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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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조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밝은 미래를 담보한 희망의 길로 가고 있는가 아니면 시계 제로의 험난한 길에 발을 들여놓았는가? 아무리 따져 봐도 필자의 결론은 후자다. 이는 결코 우격다짐의 주장이나 패배주의적 감상론이 아니다. 21세기를 이끌어 갈 새 지도자로 노무현씨를 결정한 지난 선거의 전 과정을 곰곰 따져 볼 때 과연 우리 국민이 21세기의 무한 경쟁시대를 현명하게 헤쳐 나갈 지혜를 갖고 있는지에 심대한 회의를 떨쳐낼 수 없다.
정당제도 하의 민주적 선거에선 집권당의 정책 수행에 대한 국민적 심판을 내리는 것이다. 잘했다면 그 당이 지명한 후보를 지지하고 그렇지 않다면 정권을 교체하는 것이 선거를 하는 가장 큰 취지다. 한데 지난 대선에선 이런 원칙과 취지가 실종됐다.
노무현씨를 배출한 정당은 현 집권세력인 새천년민주당이다. 바로 김대중 정권이 노씨의 태생적 고향인 셈이다. DJ 정권 5년에 대한 국민적 평가는 이미 잘 알려진 대로다. 직계 가족과 가신 측근들의 부정부패, 요직이란 요직은 끼리끼리 갈라먹은 지역편중 인사, 김정일의 환심을 사기 위해선 어떤 일이든 마다 않은 대북정책… ‘실패한 정권’의 그 탐욕과 몰염치성과 정략적 허위성에 우리는 얼마나 분노하고 주먹을 불끈 쥐었던가.
한데 바로 그 ‘우리’가 그 ‘정권’을 심판하는 선거에선 그 정권이 내세운 후보를 지도자로 선택하는 것으로써 결판났다. 무엇에 홀린 탓인가 아니면 본래 우리는 그저 그런 백성들인가. 불의를 보았다 하면 분연히 주먹을 쥐고 정의를 외치다가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깡그리 잊기 일쑤인 게 우리인가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그 불의와 부정에 눈을 감고 엄중한 심판을 방면하는 길을 터 주었단 말인가?
필유곡절-거기엔 반드시 무슨 연유가 있었다. 나는 가장 큰 요인을 우리 국민의 심리적 왜곡에서 찾는다. 이성적이 아닌 너무나 감성적인, 논리나 이치를 따지기에 앞서 ‘와’하는 군중심리와 ‘욱’하고 분노하는 ‘떼거리 바람몰이’에 쉽게 함몰되는 심리적 허약성 말이다. 말 잘 하고 분칠 잘 하는 인기주의(표퓰리즘)에 이골 난 정치인일수록 이런 약점을 잘도 이용해 먹는다.
그렇다면 결국 모든 책임은 이를 알아채지 못한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우리 내부의 반민주적 독재체제, 인권문제 등에는 그토록 저항했던 ‘민주투사들’과 인권 주의자들이 저 북녘 땅의 무자비한 독재와 인권말살 정권에 대해선 입을 다물고 이에 장단을 맞춘 군중들이 나라 운명을 결정짓는 그 모순의 책임을 누구에게 따지란 말인가. 문제는 그런 잘못된 사고의 소유자들이 사이버에 능해 통신을 장악하고 미디어도 귀신처럼 잘 다루는 젊은 세대를 수족처럼 동원하는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이른바 ‘2030 세대’, 20대와 30대의 젊은이들은 DJ 정권의 부정부패와 무능을 심판하는데 눈감고 이회창의 아들 군대 안간 것에 더 큰 반감을 표출했던 것이다.
자식 군대 안 보낸 게 잘한 짓은 아니지만 평가 비교에는 반드시 우열과 선후가 있는 법인데 그들은 그런 골치 아픈 이성적 사고를 거부했다. 그리고 우르르 투표소로 몰려 나가 이회창보다는 젊고 왠지 어수룩하고 정직해 ‘보이는’(?) 노무현에 몰표를 던졌던 것이다.
심리적 사상적 왜곡은 또 다른 데서도 목격된다. 제법 민주화가 이뤄진 듯 하지만 눈여겨보면 우리사회는 민주주의와는 한참 먼 반민주적 행동거지에 익숙해 있다. 민주주의는 다양성을 전제하는 제도다. 한데 한국에선 열심히 일해 잘 사는 자, 경쟁력을 이겨낸 고학력 자, 사회적으로 성공한 자는 그렇지 못한 자들의 질시와 원망의 대상이다. 자기의 능력 부족을 인정하지 않는다.
여기서도 문제는 후자들이 수적으로 다중이라는 사실이다. 결국 우리의 순진무후한 젊은 세대에게 이회창은 ‘가진 뱃 가이’로, 노무현은 ‘안 가진 굿 가이’로 투영됐다. 이런 식이라면 선거는 하나마나다.
지금 이 나라가 반미 분위기에 싸여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험난한 미래를 걸어갈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다. 세계에서 앞다투는 인터넷 왕국이면서 안으로는 반 국제성이 판을 치고 있다. 지금 우리가 미국과 등을 지고 살 입장인가? 안보는 어쩌며 무역해서 먹고사는 경제는 어떻게 꾸려 나가겠다는 것인가?
나는 노무현씨가 미국을 한번도 방문한 적이 없고 후보로 지명된 뒤 “사진 찍으러 미국 갈 생각이 없다”고 한 말을 꼬투리 잡을 생각은 없다. 오히려 다른 정치인이 갖고 있지 않은 줏대를 보여주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나 자신 노무현씨의 대미관을 놓고 불안해하는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다.
우리말에 ‘알아야 면장’이란 말이 있다. 하물며 한 나라의 대통령인 그가 미국에 대해 아는 게 없다는 것은 국가적 불행이다. 게다가 그를 둘러 싼 주요 참모들의 반미주의적 성향이 그를 어디로 끌고 갈 것인가를 예고한다. 노무현씨가 기존 인식을 수정하지 않는 한 국제적 고립과 반 국익적 불행의 길을 걷지 않을 수 없다는 나의 판단이 차라리 오판이기를 바랄 뿐이다.

안영모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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