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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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이렇습니다 붉은 악마의 재현

2002-12-1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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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년에 들어 한국에서 반미 감정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더니 이번 여중생 사망 사건이 계기가 되어 강력한 반미 회오리바람이 한반도를 휩쓸고 있다. 한국사람들과 가까이 사는 미국사람으로서 그리고 미국 군복을 입었던 미국 시민으로서 한국사람들의 ‘반미시위’ 기사를 읽을 때마다 마음이 착잡해진다. 큰형이 작은 동생 집을 떠날 시간이 가까이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이번 기회에 미국 정부와 한국 정부는 한반도 미군 주둔 문제를 솔직히 점검하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공산군들이 남쪽으로 쳐들어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갑자기 북한 공산정권이 무너져 북쪽의 굶주린 피난민들이 해일처럼 남쪽으로 밀려올 가능성이 남침보다 크다고 나는 생각한다. 수천만명의 배고프고 병든 북쪽 형제들이 남쪽 친척집을 향하여 한꺼번에 밀려드는 장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남쪽 사람들을 겁나게 하는 현실이 눈앞에 있다. 미군이 주둔하여 해결될 군사 문제가 아니다.
지금까지 인류 역사에는 남한처럼 잘 먹고 잘 사는 사람과 북한처럼 처절하게 가난한 사람들이 국경을 접하며 살았던 경우가 없다. 어느 한순간에 극적인 두 분자들이 혼합되었을 때 그 사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 극과 극인 음과 양이 합하여질 때 무슨 일이 일어날까?
미국을 향한 한국 국민의 분노의 열기가 월드컵 경기 때 국가팀을 응원하던 그 열기와 같다는 글을 읽는다. 월드컵 때 온 국민이 빨간 셔츠를 입고 거리로 나와 “필승 코리아”를 외치며 응원에 참여하였던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나와 반미 슬로건을 외치고 있다. 월드컵 경기 때 국민이 하나된 그 흥분을 다시 한번 포착하고 싶어 거리로 뛰어나와 반미시위 대열에 합류한 사람이 이들 중에 얼마나 될까?
함께 뭉쳤을 때 큰 힘을 행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월드컵 때 한국 국민은 체험하였다. 국민의 의지가 월드컵 4강의 기적을 탄생시킨 것인가? 붉은 악마의 열정적인 응원은 축구경기보다 더 흥미 있는 뉴스로 보도되었던 것을 기억한다. 5,000만 한인들이 세계 방방곡곡에서 승리에 승리를 거듭하는 한국팀을 응원하였다. 붉은 악마의 그 열기가 외국 축구팀으로부터 방향을 바꿔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사람들을 향하여 뜨겁게 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국사람들이 미국사람들에게 향한 원한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만약에 한국 군인이 내가 사는 캘리포니아 동네에 주둔하여 탱크를 몰고 길거리를 운전하는 장면을 상상하여 보라.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주둔군의 탱크에 치여 동네 여자아이들이 죽었다면 나 역시 분노할 것이다. 나 역시 정부를 향하여 외국 군대를 추방하라고 시위운동에 참여할 것이다. 분노가 나를 사로잡기 전에 나의 이성이 평정을 잡아주기를 원할 것이다. 여러 관점에서 상황을 고려하기 전에 극단적인 행동이 과연 내가 원하는 것인가 하고 물을 것이다.
태극기 중간에 있는 밸런스를 표현하여 주는 심벌이 인상깊게 남아 있다. 태극의 음과 양이 시작과 끝이 없는 영원한 서클을 돌면서 밸런스를 추구하는 것 같아 태극기를 좋아한다. 태극기의 빨간색과 파란색의 서클이 한국사람들에게 밸런스의 중요성을 상기시켜 주는 심벌이라고 나는 믿는다.
반미 시위자들이 거리를 행진하면서 태극기를 흔들 때에 국기 한 가운데에 있는 음과 양의 조화를 보면서 밸런스의 중요성을 기억하였으면 한다. 한미 두 정부의 밸런스 된 견해가 고려된 후, 미군을 한반도에서 철수하는 합리적인 방법을 모색하여야 한다. 한미 관계가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지라도 성급하게 결정지어서는 안 된다.
한국의 국기가 대변하여 주듯이 밸런스 있는 결정이 필요하다. 통일을 눈앞에 두고 한반도의 앞일을 붉은 악마의 열기로 성급하게 결정할 것이 아니라 한국 국기가 대변하여 주는 밸런스를 기억하며 차근차근 풀어가야 한다.
크리스 포오먼<교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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