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와이너리 주인이 된 엔지니어

2003-01-0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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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인이야기

보잉사 와인클럽 회원이던 벤자민 스미스
직접 만들기 경연대회 2년 연속 싹쓸이
결국 자신을 도와준 여변호사와 결혼 생산나서


와인을 즐기는 데도 경지가 있다. 처음엔 아무 생각 없이 마시다가, 어느 새 내가 어떤 와인을 선호하는지를 알게 되어 그 종류의 와인을 주로 찾다가, 좀 더 새로운 맛은 없을까 모험하게 된다.
그러면서 와인의 깊고 다양한 맛을 알게 되고, 와인은 술이 아니라 음식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면 잘 맞는 음식과 더불어 마시는 즐거움도 알게 된다. 여기에 와인 자체뿐 아니라 분위기와 음식 맛, 같이 마시는 사람들과의 교제를 함께 즐길 수 있게 되면 이미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 경지를 넘어서게 되면, ‘내가 스스로 와인을 만들어 마시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영화감독 프랜시스 코폴라가 미국 최고의 포도주 생산지인 나파 밸리에 Niebaum-Copola라는 와이너리에서 자기 이름을 건 와인을 만들어내는 게 그 좋은 예다. 하지만 좋은 와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포도가 필요하고, 좋은 포도를 재배하기 위해서는 좋은 토양과 기후가 필요한데, 나파나 소노마와 같이 기후와 토질 조건이 좋은 곳은 ‘금싸라기 땅’이니, 보통 사람이 그 꿈을 실현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워싱턴주에 위치한 보잉사에는 그런 경지에는 올랐지만 현실적으로 실현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100여명 모여서 만든 특별한 와인 클럽이 있다. 보잉사 내에 와인 주조장을 설치하고 워싱턴 주 각지에서 개개인이 선별하여 사들인 포도로 포도주를 제조하는 클럽이다.
매년 회원들은 누가 만든 와인이 제일 훌륭한가를 가리는 대회를 갖는데, 96년과 97년을 싹쓸이한 사람은 벤자민 스미스라는 엔지니어였다. 그는 와인을 만들면서 친해진 한 여성 변호사의 도움으로 자기가 만든 와인을 판매하기에 이르렀으며, 98년 처음으로 판매용 와인을 생산해냈다. 그의 꿈은 ‘워싱턴주 최고의 보르도 스타일 와인’을 만들어내는 것. 그가 생산한 99년도 적포도주는 언론에 의해 워싱턴주 최고의 카버네 혼합(blend) 와인으로 극찬을 받았다.
스미스는 결국 자신을 도와준 맥너트 변호사와 결혼했으며 작년에 보잉사를 그만두고 최근 워싱턴주 레드 마운틴 근처에 포도를 재배할 수 있는 10.5에이커의 땅을 사들였다.
그의 희망은 자신이 재배한 포도로 두 가지 정도의 카버네 블렌드를 만드는 것이다. 현재 케이던스(Cadence)라는 상표로 출시되는 그의 와인 연간 생산량은 800케이스이다. 마켓에서 살 수 있는 가격은 99년 와인이 병당 35달러 정도이지만, 전문가들은 얼마 안 가서 그 가격에는 케이던스 와인을 구하기 힘들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벤자민 스미스의 이야기는 마치 꿈같은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나 같은 보통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인타운에서도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와인 동호회를 만들고 직접 구입한 포도로 포도주를 만드는 시설을 설비하고, 훌륭한 포도주가 만들어지면 충분히 시장에 내 놓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야무진 꿈도 가져본다.

상식코너 잘 모르는 와인 고르는게 유리
식당에서는 샤도네나 카버네 소비뇽 처럼 많이 알려진 이름의 와인 종류보다는 잘 모르거나 인기가 덜 한 와인을 고르는 것이 소비자에게 유리하다. 이유는 인기가 덜하고 잘 알려지지 않은 와인을 식당에서 준비하여 리스트에 올려놓았을 때는 그 와인이 그만큼 뭔가 특별한 맛과 향을 지니고 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 오랜만에 외식하면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거나 자주 마시는 와인보다는 그 기회를 살려서 평소에 마시지 못하는 특별한 와인을 마셔보는 게 좋겠다.


<최선명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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