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말 입법… 시민권자 아니면 신고해야
어기면 200달러 벌금 내거나 추방 당할 수도
요즘 워싱턴 DC 소재 이민국 본부에는 하루 수만통의 주소변경 신청서(AR-11)가 접수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처 처리하지 못한 주소변경 신청서만 50여만장이 창고에 그냥 쌓여 있습니다. 일손이 딸려 제 때 처리를 못한 것입니다. 법무부는 지난 7월말 주소변경 시행령을 입법 예고했습니다. 시민권자가 아닌 모든 사람은 주소를 옮긴 지 10일 안에 주소 변경을 하라는 것입니다.
이 법은 시민권자가 아니면서 미국에 살고 있는 15세가 넘는 적법 체류자 1,000만명과 800만에 달하는 불법체류자도 이 법의 우산에 들어갑니다. 주소변경을 안 하면, 200달러 벌금형 내지 30일 구류, 심하면 추방까지 당할 수 있다고 법은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자 해당자들이 앞다투어 주소변경 신청서를 보내게 된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해당자는 가족 한 명당 한 장씩 써 보내야 하기 때문에 자연 주소변경 신청서가 넘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소변경 신청서는 인터넷을 통해서 손쉽게 받을 수 있지만 이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민국까지 다리품을 파는 일도 많은 모양입니다.
주소변경 의무야 1952년부터 이민법에 있었습니다. 지금도 이 의무는 이민법 265(A)에 명문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 번도 이 법이 엄격하게 시행된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연방 법무부가 이 규정을 새삼 엄격하게 해석하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연방 정부가 이렇듯 입장을 바꾼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우선 추방을 당하게 생긴 이민자들이 곧잘 내세우는 핑계는 이사를 가는 바람에 추방관련 서류를 받지 못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당사자가 통지를 받지 못한 채 열린 재판에서 추방선고를 받았다는 주장이지요.
실제로 궐석재판에서 추방결정을 받은 엘살바도르 출신 이민자 한 사람은 이민국이 추방재판 통지를 자기가 살던 옛날 주소로 하는 바람에 연락을 받지 못해 추방재판에 참석하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이민상소법원(BIA)은 이민국이 통보 의무를 어겼기 때문에 이 사람을 바로 추방시키는 것은 부당하다고 결정했습니다. 바로 이 사건이 주소변경 의무규정을 실시하게 된 직접적인 배경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주소가 바뀌는 바람에 재판 통지를 받지 못했다는 구실은 더 이상 설자리가 없게 되었습니다.
두번째 이유는 안보와 관련이 있습니다. 미국 시민이 아닌 이민자들이 어디에 사는지 알아야겠다는 것입니다. 9.11 이후 생긴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소변경을 하지 않아 실제로 혼이 난 사람도 있습니다. 동부에 사는 한 팔레스타인인은 올해 초 과속운전을 하다 적발되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사람은 수천달러에 달하는 뭉칫돈에 지도까지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장 테러 관련자로 의심을 산 그는 심한 조사를 받았습니다.
결국 그가 테러와 아무 관련이 없는 것으로 판명이 되었지만, 주소변경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빌미가 되어 이민국은 이 사람을 추방하겠다고 나섰습니다. 다행히 이민판사가 이민국의 이런 무리한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주소변경 신청서를 내도, 이민국이 제때 처리할 수 없는데 있습니다. 이민국 업무가 워낙 많은데 덤으로 주소변경을 일일이 하라니 일선 실무자에게 쓸데없는 부담을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실무진의 속사정을 알 지 못하는 윗사람의 머리 속에서 나온 탁상행정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주소변경을 하지 않았다고 처벌하는 것은 당장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고의로 주소변경을 하지 않는 경우가 아니라면 처벌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민국의 방침입니다. 그런데 이 고의라는 말이 고약합니다.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고리가 되는 것이 이 말이기 때문입니다.
김성환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