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법 지식’쏟아 커뮤니티 성장에 기여해야

2002-10-2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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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변호사 중에는 전문성을 살려 남에게 봉사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소수이긴 하지만 법률 지식을 이용해 의뢰인을 골탕먹이는 사람이 있다. 최근 한미변호사협회가 주 검찰의 지원을 받아 신설한 ‘이민사기대책반’이 커뮤니티 서비스의 시발로 주목받고 있지만 업계의 사회봉사는 아직 초보단계에 있다는 게 중론이다.

이민사기대책반 신설은 억울한 피해자에 희소식
‘문제 변호사’ 솎아내는 끊임없는 자정노력 절실
개인, 단체간 분쟁 중재역 맡아 롤 모델 됐으면

타운 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 한인 변호사가 업무와 관련해 연방이민국 직원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최근 체포됐다. 수사관의 함정수사에 걸린 것이다. 5년 전 다른 한인 변호사가 한인 의뢰인들에게 임시영주권을 받아주기 위해 이민국 직원에 뇌물을 주었다가 뇌물공여 등 19개 혐의로 기소된 적이 있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변해도, 최고 15년의 실형을 선고받을 수 있는데도 일부 변호사의 잘못된 행태는 부끄러운 ‘대물림’을 하고 있다.
유혹의 근원은 돈이다. 이민업무뿐 아니라 돈이 되는 곳에는 돈에 눈먼 변호사가 간혹 끼어 있다. 카이로프랙터, 의사, 브로커 등과 한 조를 이뤄 보험금을 노린 교통사고 조작에 가담하거나 이를 방조하는 대가로 자기 몫을 챙기는 경우이다. 수개월 전 고의 접촉사고를 유발한 뒤 보험금을 부당 청구한 공모혐의로 변호사가 기소되기도 했다. 연방수사국이 자동차 보험 사기와 관련해 일부 한인들을 수사선상에 올려놓고 있다고 해도 수사망이 좁혀오면 그때뿐, 잠잠하면 다시 고개를 든다. 한 변호사의 지적대로 “한인사회에서 하루빨리 없어져야 할 관행”이다.
‘문제 변호사’는 법에 무지한 의뢰인을 안하무인격으로 대하기 일쑤다. 올 봄 한국을 다녀온 한 한인은 한국체류 기간이 길어지는 바람에 LA공항에서 여권을 압수 당하자 전문변호사를 찾아갔다. 변호사비에 급행료까지 지불했지만 반년이 지나도록 일 처리가 되지 않아 다른 변호사에게 맡기기 위해 케이스를 철회하려 하니, “이미 서류에 사인했으니 안 된다”고 했다고 한다. 법을 몰라 변호사를 전적으로 의지했는데 법률 문구만을 들먹이며 의뢰인을 푸대접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비난했다.
의뢰인의 케이스를 맡았으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조항이 계약서에 있든 없든 그렇게 해야하는 게 인간적인 도리이고 직업인으로서 책무임은 변호사들도 잘 알 것이다. 연전에 한 변호사는 온갖 매체를 통해 ‘이민문제 해결사’를 자처하는 선전을 하고 순진한 의뢰인들에게서 수천 달러씩을 받은 뒤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아 물의를 빚자 한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도 위법행위를 저질러 실형을 선고받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 변호사가 지금도 버젓이 영업을 하고 있고 자초지종도 모르는 한인들이 일을 맡기고 있으니 언젠가 또 한번 타운이 시끄러워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아는 것은 힘”이라고 하지만 진정한 힘은 지식을 올바로 사용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것을 잊고 사는 변호사가 아직도 있는 모양이다.
변호사가 간혹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그만큼 기대치가 높기 때문이다. 법이 지배하는 이 나라에서 법을 잘 알고 보편적으로 돈 잘 버는 직업이라서 그런 게 아니다. 커뮤니티 서비스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그 무엇’이라는 생각에서다. “한인 변호사가 더 많아야 한다”는 말은 치열한 경쟁사회를 도외시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서비스를 제고하고 우리의 위상을 올리는 데 힘이 될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한미변호사협회에 따르면 남가주의 한인 변호사는 약 2,000명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변협 회원은 약 300명. 이들은 연 50달러인 회비를 꼬박꼬박 내는 회원이다. 게다가 변협의 모임은 대체로 30명 안팎의 이사들이 참석하는 게 관례이다. 물론 회장 이·취임식 등 큰 행사 때 비정기적으로 참석하는 변호사들을 합하면 그 수가 늘겠지만 그래도 대다수 변호사는 변협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실정이다.
한 변호사는 “별로 업무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아 참석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른 변호사는 “1세들이 참석하기엔 왠지 분위기가 맞지 않는다”고 이유를 들었다. 변협 관계자는 “변협은 주로 1.5세들이 주도하고 있고 2세들은 아직 본격적인 활동을 할 연령층에 도달하지 못해 회원이 별로 없으며 1세들도 참여가 미미한 게 사실”이라고 했다.
실질적인 측면에서 대표성에 흠집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명실상부한 한인변호사들의 모임이 되려면 비회원들을 흡수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저마다 수긍이 가는 이유이지만 한인 변호사들이 커뮤니티 서비스에 힘을 모았을 때 생길 시너지 효과를 상상해 보면 유기적인 네트웍 형성이 시급한 사안임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변협이 정기적으로 무료법률상담을 통해 한인들을 돕고 있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또 며칠 전 변협이 주 검찰의 협조를 받아 이민사기대책반을 신설함에 따라 한인사회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 이민사기를 근절시키려 시도한 것도 박수 받을 일이다. 법과 영어를 몰라 일부 악덕 변호사에게 끌려 다니던 한인들이 대책반에 신고해 징벌을 내릴 수 있게 됐으니 당연하다.
하지만 이는 시발점에 불과하다. 교통사고 사기, 허위 세금보고 조장 등 구린 구석이 또 있다. 일례로 큰 고객이 세금을 줄여달라고 부탁할 때 넘어선 안될 선을 넘어서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세금환불을 늘려주겠다며 호객하는 변호사가 있다”는 연방국세청 범죄수사국 관계자의 지적을 그냥 흘려버릴 게 아니다. “법의 허점을 이용하고 법을 무리하게 해석하다 보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동료 변호사의 충고를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업계 자체의 자정노력이 요구된다. 물의를 일으키는 변호사를 공개해 ‘환부’를 도려내야 한다.
변호사들의 커뮤니티 서비스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판사나 검사로서 주류사회에 당당히 ‘우리’를 알릴 수 있다. 변호사냐 검사냐 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지만 봉급이 적고 고된 검사의 길을 택하는 비율이 저조한 것은 한번쯤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까 한다. 검사 지망생이 많으면 한인사회 정치력 신장에 플러스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데 상당수 변호사들도 동의하고 있으니 말이다.
변호사들은 분쟁의 중재역에 걸 맞는다. 걸핏하면 터져 나오는 한인사회 각계의 분규가 법정으로 비화해 우리의 얼굴에 먹칠을 하곤 한다.
종교단체에서 신도들간에, 봉사단체에서는 주류와 비주류간에, 성격이 유사한 단체들은 정통성 시비로 입씨름에서 몸싸움까지 벌이다가 급기야 송사에 휘말려 한인사회를 피멍들게 하는 경우를 종종 보아왔다. 법을 잘 아는 변호사들이 중재에 나서 ‘집안’에서 원만하게 해결한다면 이보다 보기 좋은 일이 없을 것이다. 아울러 테러 정국이라 소수계인 우리가 인종차별적이 대우를 받게 되는 사례가 생길 수 있다. 인권변호사들이 필요한 상황이 늘어날 공산이 크다.
인권이니, 무료봉사니 하면 “물정 모르는 소리”라고 폄하할 수도 있다. 실제 생계 걱정을 하는 변호사도 있다니 말이다. 그래도 변호사는 여전히 선망의 대상이고 존경도 받는다.
이젠 보다 대승적 차원에서 커뮤니티 서비스를 위해 ‘유형의 답변’을 줄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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