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에 온 신경을 쓰고 있는 미국에게 북한 변수가 심각하게 등장했다. 북한이 핵 개발 프로그램을 은밀히 진행해 왔다고 시인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북한의 핵무장은 94년 체결된 제네바 협정을 파기하게끔 하는 점 외에 남한과 일본의 핵무장을 촉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파장이 지대하다. 남한에 주둔하고 있는 3만7,000명의 미군의 안전이 위협받는다는 점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부시 행정부에겐 선택할 정책옵션이 별로 없다. 우선 북한과의 대화 분위기가 조성돼 있지 않고 부시 행정부 자체가 북한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만일 미국이 발표한 외교전략의 원칙대로라면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을 고려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선제공격은 너무도 비현실적이다. 게다가 부시 행정부도 아직 군사행동을 감행한다는 주장을 거북해 하는 형편이다. 이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북한의 무기 사정권에 들어 있는 서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아무리 미국이 막강해도 이라크와 북한에 대한 양면공격은 무리이다. 물론 북한이 미국이 원하는 대로 따라와 줄 수도 있다. 워싱턴 일각에서는 북한이 이처럼 사실을 말한 것은 미국이 압력을 행사해 온 덕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은 우리를 여러 차례 놀라게 했고 이번 핵 개발 시인도 마찬가지다. 지난 93년 미국이 북한에 국제 핵사찰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대화를 하지 않겠다고 하자 북한이 핵무기확산금지조약에서 탈퇴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던 것을 생각해보자.
만일 부시 행정부가 북한을 고립시키거나 제네바 협정을 무효화한다면 북한은 보다 위협적인 핵무기를 생산할 지 모른다. 미국은 이를 폐기하는 것보다 당분간 협정 시행을 보류하는 게 나을 것이다. 아울러 북한과의 외교협상을 지속시켜야 할 것이다. 북한 핵 프로그램에 대한 국제사찰을 확보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게 현명하다.
북한의 도전적인 발언을 일단 제쳐두고 이번 핵 프로그램 시인을 대화 용의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북한은 잠재적인 위기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핵 사찰에 대한 북한측의 확실한 답변과 보장을 얻어내는 대신,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위한 정치적 경제적 단계를 밟을 수 있다는 제의를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아야 한다.
결국 외교가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그 책임을 북한에 돌릴 것이다. 그래야만 미국이 국제 분쟁 시 필요할 경우 무력을 사용하더라도 확고한 지지기반을 다질 수 있는 것이다.
조엘 위트/뉴욕타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