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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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보호와 전통문화

2002-10-1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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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게 이렇습니다

조간신문을 펼치자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잔인한 행위를 중단하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전면 광고 헤드라인이다. “이 애완용 개들은 납치되어 철장에 갇혀 학대를 받다가 개고기 국이 된다” 라는 사진설명과 함께 철장에 갇힌 귀엽고 영리하게 생긴 세 마리 개를 찍은 사진이 신문 전면을 장식하고 있다. “한국에서 많은 애완용 개들이 개고기로 희생되고 있다. 여러분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라는 호소문은 잔인한 동물학대를 막기 위하여 기금이 필요하다는 공지사항과 더불어 독자들에게 대한민국 대통령과 보사부 장관에게 편지를 쓰라고 설득하는 내용이다. 한국 동물보호협회라는 단체가 돈을 내고 하는 전면광고 이다 .
이 광고는 전통문화와 신문화의 극단적인 견해가 충돌하고 있는 장면을 묘사해주고 있다. 한국사람 5% 정도가 과거의 풍습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이들은 전근대적인 사고로 개고기가 효험 있는 약이라고 믿기에 개고기를 보약으로 먹을 것이다. 5% 정도는 신문화 의식을 가진 사람들로 개의 생명도 인간의 생명처럼 소중하다는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다.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은 양극단의 중간쯤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고있다. 다수의 한국사람들이 개고기를 먹어 본적이 없을 뿐더러 국제사회에 한국인이 개고기를 먹는 민족으로 소문이 난 것을 창피하게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개고기나 고양이고기가 소고기나 돼지고기와 다를 게 없지 않느냐고 전통을 대변하며 개고기를 먹는 전통이 구세대와 함께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사람들이 개고기를 먹는다”는 정치성을 띤 문제의 광고를 다른 각도로 보면 좀 더 복잡하여진다. 포스트모던시대의 신문화는‘다양성’을 찬미하는 슬로건을 내건다. 타문화의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존중한다는 사고를 전제하는 문화이다. 동시에 “동물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라는 사고를 전제하기도 한다. 그러면 21세기의 이 두 가지 가치관이 충돌될 때 무슨 일이 생길까?
샌프란시스코처럼 자유스런 도시에서 이와 같은 두 가지의 가치관이 충돌하는 것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몇 년 전 만해도 차이나타운 노상에서 거북이나 개구리를 그릇에 담아 놓고 팔았다. 고객이 살아있는 거북이를 고르면 그 자리에서 거북이를 죽여서 싱싱한 고기로 건네어 주었다. 이러한 거래는 중국식 전통문화이다.
그러나 동물보호자들의 건의로 샌프란시스코 시정부는 길거리에서 거북이와 개구리를 고깃감으로 파는 것을 금지하였다.
별의 별 동물들을 보약이라고 믿고 먹는 사람들의 심리를 개인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몇 년 전에 직장에서 집에 돌아왔을 때이다. 우리 집 처마에 이상한 물건이 대롱대롱 걸려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아내에게 물건의 정체를 물었다. 아내는 어떻게 설명을 하여야 좋을지 몰라 망설이더니 사전을 펼쳐 보이며 ‘곰쓸개’라고 설명하여 주었다. 한국에서 방문하한 그녀의 친척이 산호세에서 많은 돈을 주고 사왔다고 귀띔하여 주었다. 나는 처마에 달려있는 그 물건이 캘리포니아 법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여 주며 곰쓸개를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부탁하였던 것을 기억한다.
나는 극단을 피하는 사람이다. 전통문화를 보존하려는 개인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믿지만 한계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허락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동물을 학대해서는 안 된다고 믿지만 동물이 사람과 동등하게 취급되어야 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동물보호를 우선 순위로 하는 사람들이나 전통문화를 고집하는 사람들이나 서로가 자기들의 견해가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양쪽 다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개고기나 고양이고기를 먹지 않는 세상은 좀 더 살기 좋은 곳일 것이다. 사람들이 동물의 생명을 사람의 생명과 동일시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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