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장애인의 등 떠미는 사회

2002-09-17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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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과 생각

장애인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로 ‘백치 아다다’가 있다. 계용묵씨가 1935년 발표한 소설이다. 아다다는 마음이 그지없이 착한 여성이었지만 부모, 남편등 모든 사람에게서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다가, 마침내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으리라고는 믿었던 노총각 수룡이에게 떠밀려 물에 빠져 생을 마감한다.

이 작품은 그 시대가 보는 장애인에 대한 시선과 태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작품을 장애인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첫째, 작가가 아다다를 중복장애인으로 등장시킨 것이 예사롭지 않다. 장애인들이 겪는 고통과 아픔 역시 일반인들에 비해 중복적이라는 암시를 하고 있다.

둘째, 장애인들 그 중에서 발달장애인들과 정신지체장애인들이 인권유린의 사각지대에 서있음을 분명하게 그려주고 있다. 신체장애인들이 소설에 등장하는 경우 일반대중을 향해 목발을 휘두르며 행패를 부리는 것으로 묘사되는 반면에 정신지체 장애인인 경우는 통칭 ‘바보’로 불리면서 일반인들의 노리개 역할로 묘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셋째, 장애인들의 사회에서의 역할에 대해서도 여전히 부정적이라는 점을 소설은 보여준다. 즉 아다다를 낳은 부모도 장애아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기 눈앞에서 사라지기만을 바랐고 장가 못든 사내들은 단지 육체의 욕망을 채울 대상으로 그리고 일을 시키는 가축쯤으로 생각했다.

넷째, 장애인들 역시 가정을 이루고 살고 싶은 순수한 욕망이 있고 그럴 권리가 있음을 아다다의 마음을 통해 애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행복을 위하여 자기의 순박한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아다다를 통해 순수한 행복추구의 모습을 본다. 이러한 아다다의 순진한 사랑이 남자들의 계산되고 변하는 사랑에 대비되어 밤 강물에 비치는 달빛처럼 반추되어지고 있다.

다섯째, 소설은 아다다의 죽음을 통해 사내들의 물욕을 고발하긴 했어도 장애인에 대한 뿌리깊은 사회적 학대를 직접 고발하지는 않았다. 다만 수룡이가 아다다를 강물에 밀쳐 넣어 죽임을 통해 아다다를 죽인 사람은 수룡이가 아니라 바로 글을 읽는 독자임을 암시한다는 점에서 사회적인 간접적 고발로 본다.

필자는 중학교 시절에 읽고 잊었던 이 소설을 최근에 다시 읽으며 깊은 상념에 잠겼다. 그 때는 나도 수룡이 같은 총각의 하나로 글을 읽었지만 지금은 아다다의 입장으로 소설을 읽었다는 점이 다른 점이다.

생각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아다다를 생각하며 나의 딸 조은이를 생각하니 눈가에 물기가 적시운다. 무언가 열심히 말하는 아이. 그러나 알아들을 수 없는 나. 아다다가 아다 아다 하는 말이 조롱거리가 되었듯 나의 딸아이 조은이가 진지하게 내뱉는 말이 다른 아이들에게 놀림감이 될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괴롭다.
누가 내딸 같은 장애인을 보호해 주어야 하는가? 가는 곳보다 환영받지 못하고 등에 떼밀려 올 나의 딸을 생각하니 잠이 오지 않는다. 요즈음 데이케어를 다녀오는 딸아이가 왠지 신나 하지 않는다. 선생님도 아이들도 자기를 환영하지 않기 때문이리라. 언제나 두손 벌리고 환영하는 아빠, 엄마, 아이 뺨에다 연신 뽀뽀를 해주는 오빠들이 있는 집에 오면 그제야 생기가 도는 나의 딸. 하지만 나에게는 믿음이 있다. 이 세상 모두가 조은이를 강가로 등을 떠민다 해도 우리 주님은 나의 딸을 번쩍 안아 주시리라 믿는다.

장애인들이 아늑하고 포근하게 여길만한 집은 어디인가? 하늘나라밖엔 완전한 곳이 없겠지만 하늘나라 식구인 믿음의 식구들에게만큼은 등을 떠밀리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무관심은 등을 떠미는 가장 무서운 큰손이다.

김홍덕 목사·조이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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