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폭풍우는 반드시 멎는 것

2002-09-1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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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과 생각

1년반 전 이사를 하는데 이삿짐 센터에서 히스패닉 일꾼 두 명이 왔다. 그런데 그들은 내가 한국인 것을 알고 내 얼굴을 힐끗힐끗 쳐다보며 “빨리 빨리”라고 장난기 섞인 말을 하지 않는가! 처음에는 자기들끼리 하는 말인 줄 알았다가 곧 나에게 하는 말인 것은 알아차렸다. 그 순간 한국 사람으로서의 치부를 이방인에게 들킨 것 같아 당황했었던 기억이 있다. 이제는 이곳 LA의 다민족 사회 속에서도 “빨리 빨리”라는 말은 한국 사람들을 대표하는 말이 되어버린 사실에 입맛이 쓰기까지 했다.

한국 사람들의 성급한 기질의 대명사처럼 되어버린 “빨리 빨리”라는 말을 들먹이지 않아도 우리가 매사에 너무 조급하다는 사실을 부인할 길은 없는 것 같다. 기다림과 인내의 미학을 배우고 훈련하지 못한 우리들은 어떤 일이 생기면 이것저것 따져보기보다는 곧 바로 반응하고 만다. 특히 우리는 어려운 일을 만나면 더욱더 급해질 뿐만 아니라 초조해 하고 안절부절못한다. 조금 더 여유를 갖고 생각하지 못하고, 기다리지 못함으로 저질러 버린 실수와 때문에 때늦은 후회를 많이 하는 것이 우리들의 삶의 모습이다.

‘적극적 사고방식’으로 유명한 노만 빈센트 필 박사의 일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아침, 그는 워싱턴 DC에서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는 신문을 보면서 이륙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기체가 흔들려 창 밖을 내다보니 거센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었고 어느 새 몰려와 온통 하늘을 뒤덮은 검은 구름들 아래로 장대같은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순간 귀청을 때리는 천둥과 번개 소리와 함께 다시 기체는 심하게 흔들렸고 이륙을 기다리고 있던 승객들은 불안한 마음에 이곳저곳에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기내 방송을 통해 조종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승객 여러분! 이 공항은 지금 폭풍의 중심에 있습니다. 이런 기후 조건으로는 이륙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폭풍의 중심이 이동할 때까지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러나 조종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또 한번 기체가 심하게 흔들렸고 따라서 승객들의 불안은 고조되었다. 그때 또다시 조종사가 “여러분! 절대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편안히 계십시오. 어떠한 폭풍우라도 반드시 멎게 마련입니다.” 조종사의 음성은 차분했으며, 흔들림이 없어 승객들에게 확신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폭풍의 중심이 완전히 이동하여 이륙이 가능할 때까지 모든 승객은 미동도 하지 않고 기다렸다. “어떠한 폭풍우라도 반드시 멎게 마련”이라는 믿음으로.

우리가 살면서 기억해야 할 인생의 진리가 있다면 바로 그것은 “어떠한 폭풍우라도 반드시 멎게 마련”이라는 사실일 것이다. 이제껏 우리에게 불어닥친 인생의 폭풍우들을 한번 생각해 보자. 그것이 작은 것이던, 큰 것이던 간에 우리 인생에 불어온 폭풍우가 멎지 않은 적이 단 한번이라도 있었는가?

비록 많은 아픔과 상처를 남기기는 했어도 멎지 않은 폭풍우는 없었다. 반드시 검디검은 먹구름은 물러갔으며, 언제나 태양은 눈이 부시도록 찬란하게 다시 떠올랐다. 그리고 세상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왔고, 희망이라는 무지개는 도도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었지 않았는가!

조급함과 성급함은 부실 인생의 원인이다. 그러나 기다림과 인내로 만들어 가는 인생에 결코 부실이라는 단어는 없다. 우리 모두 기다림과 인내의 미학을 배우고 훈련하여 각자의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어 내고야마는 자랑스러운 의지의 한국인들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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