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라크 전 최악의 시나리오

2002-09-1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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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와의 전쟁 준비를 하면서 최악의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 부시는 후세인을 ‘악’으로 규정하고 그에게 우리를 위협할 화생방 무기가 있다고 경고한다. 후세인의 위험을 과대 포장하고 있다는 일부 주장에도 불구하고 부시의 우려는 근거가 있다. 그러나 후세인과의 전쟁이 빠르고 별 피 흘리지 않고 쉽게 끝날 수 있다고 시사하는 것은 그가 최악의 사태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부시는 사전 공격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지만 후세인도 사전 공격을 할 수 있다. 후세인이 사우디를 먼저 침공한다면 미국이 바그다드를 공격하는 것은 더 어려워질 것이다. 걸프전 때 후세인은 쿠웨이트 유정 대부분을 불질러 버렸다. 그가 사우디에서도 똑같은 짓을 한다면 세계 경제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또 한가지 시나리오는 이스라엘을 생화학 무기로 공격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스라엘은 핵무기로 대응할지 모른다. 그럴 경우 이라크 정권은 바뀌겠지만 문제가 거기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바로 인근에 핵무기로 무장한 회교국가인 파키스탄이 있다.

이스라엘이 핵무기로 회교국을 공격한다면 무샤라프는 대통령직을 유지하지 못할 것이다. 정권을 잡은 회교 세력은 멀리 있는 이스라엘은 공격하지 못하고 가까이 있는 인도에 핵공격을 감행한다. 그럴 경우 전 세계가 혼란에 휩싸일 것이다.
9·11 사태 이전이라면 이런 글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수십 년 간 중동을 커버한 언론인이다. 9·11 이전까지 이런 생각은 공상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가능성이 있다. 후세인의 범죄는 스탈린에 비하면 별 것 아니다. 그럼에도 역대 미국 대통령은 세계의 안정을 위해 소련을 공격하는 것을 자제했다.

이라크는 체제 보전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독재 국가란 점에서 소련과 닮아 있다. 소리 한번 못 지르고 무너진 소련은 인내심 있는 정책이 성과를 거둘 수 있음을 입증한다. 후세인도 언젠가는 무너질 것이다. 냉전에서 보여준 인내가 최악의 시나리오를 향해 달려가는 것보다 현명하다.
밀튼 비오스트/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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