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 1주년을 맞아 300여권의 관련 서적이 나왔다. 한 사건을 두고 이렇게 많은 책이 발간된 적은 없다. 한줌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심장부를 강타당한 미국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이 사건을 두고 미국민들은 기본적으로 두가지 입장을 보이고 있다. 테러 주모자들과 배후 세력을 힘으로 응징해서 테러의 뿌리를 뽑자는 입장과 미국이 제국주의적 오만에서 벗어나 겸허히 타자의 입장에 서는 것만이 근본적 해결책이라고 보는 견해이다. 윌리엄 베넷 전 교육부장관은 미국이 건강한 애국심을 바탕으로 선과 악을 분명히 가리며 악을 물리치는 싸움에 당당하게 나설 것을 주장한다. 그의 저서 ‘우리가 싸우는 이유’를 간추려 소개한다.
9월11일 참사 이후 미전국은 애국적 열정으로 불탔다. 어디를 가나 성조기가 휘날렸고 국가가 울려퍼졌으며 자원봉사자, 헌혈자, 성금이 줄을 이었다. 의로운 분노와 결의로 온 국민이 대통령을 위시한 국가 지도자들, 군대, 그리고 미국을 지지하는 데 하나가 되었다. 오랜만에 미국이 굳건히 단결하며 뭉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같은 애국 물결이 거리를 휩쓸고 있을 때 사회 일각에서는 전혀 다른 의견들이 청중들을 사로잡고 있었다. 미국이 세계에서 추구하는 목적들에 대해 회의적이고, 심하게는 경멸적이기까지 한 시각으로 아프간 전쟁이나 테러와의 전쟁에서 미국의 편에 설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입장이다. 예를 들면 이런 의견들이다.
“무력으로는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보복이 아니라 회복을 생각해야 한다”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처벌은 사랑뿐이다”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한 사람의 테러리스트는 다른 사람의 자유투사이다”
“미국의 외교정책은 피로 흥건히 적셔져 있다”
“세계무역센터 참사는 칼럼바인 고등학교 사건의 국제적 모습이다. 다른 사람들을 너무 오래 못살게 굴면 결국 보복이 돌아오는 것이다”
미국에 대해 지극히 비판적인 이같은 입장은 사랑을 내세운 종교계, 다문화주의와 상대주의를 내세우는 학계 및 언론계에 뿌리를 두고 있다. 애국적 물결에 정면으로 반기를 드는 이들 입장은 소수 견해이지만 영향력이 크다는 점을 베넷은 우려한다.
비폭력 평화주의의 가장 큰 흐름을 이루는 것은 기독교이다. 가톨릭 및 개신교의 주요 분파들이 비폭력 원칙을 따르고 있다. 예를 들어 워싱턴 D.C. 의 한 목사는 폭력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 군사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며 “우리가 폭력의 길을 선택한다면 더 많은 폭력이 따를 뿐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나간다면 세상에는 맹인과 이빨 없는 사람들밖에 안 남을 것이다”고 설교했다. 가톨릭에서도 지난해 12월 중순 68개 단체가 아프간 전쟁이 비윤리적이고 교리에 맞지 않는다는 견해를 천명했다.
그러나 기독교 역사에는 전쟁이 의를 위한 싸움일 경우 이를 용납하는 전통이 없지 않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정당한 전쟁을 규정하는 세가지 범주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전쟁이 합법적 통치권자에 의해 선포되었는가, 전쟁의 목적이 악을 응징하거나 불의를 바로잡는등 의로운 것인가, 전쟁에서 악을 피하고 선을 증진할 의도가 있는가 등이다.
베넷은 미국의 대 아프가니스탄 전쟁이나 테러와의 전쟁이 이 범주에 맞는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평가한다. 비폭력만을 내세우며 악을 응징하지 않는 것은 더 큰 악을 끌어들이는 결과라며 나치 치하에서 히틀러 암살모의에 가담했던 디트리히 본훼퍼목사를 모범으로 소개한다.
그는 조국에 대해 회의로 일관하는 일부 견해의 온상으로 교육을 지적한다. 불의에 대해서 분명하게 분노하며 행동하는 것이 시민으로서 바른 행동인 데반해 미국 교육은 “폭력은 무조건 나쁘다. 분노는 나쁘다. 모든 것을 대화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원칙만을 강조, 미국민들이 분노의 정당성을 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좌파 경향의 학계와 언론계는 지나친 상대주의로 상대방의 입장을 너무 배려하는 나머지 자신의 입장을 잊어버리는 우를 범하고 있다. 상대주의는 세계를 하나의 잣대로 잴수가 없으므로 아무 것도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악’이나 ‘테러리스트’란 말을 쓰기도 꺼린다. “한 사람의 테러리스는 다른 사람의 자유투사”라는 로이터 통신의 입장이 좋은 예이다.
그러나 테러리스트와 자유투사 사이를 분명히 가르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목적 달성을 위해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하느냐 아니냐의 차이라고 베넷은 강조한다.
미국 교육의 맹점으로 베넷은 또 다문화주의와 다양성, 정치적 편견배제 원칙만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미국이 다른 많은 문화중의 하나를 대표할 뿐, 미국의 독특한 가치와 우월성을 가르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역사나 문화 교육을 통해 조국을 학생들의 가슴에 심어주는 작업이 너무 안되어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미국의 55개 일류대학중 미국역사를 필수과목으로 하는 대학은 하나도 없고 서양문화사를 필수과목으로 하는 대학은 3곳 있을 뿐이다. 학생들이 조국의 과거와 그 사회의 가치, 이상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는 상태에서 그 의식의 진공에 다문화주의, 상대주의, 혹은 단순한 반미주의 바람이 파고드는 것이 문제라고 그는 진단한다.
미국은 실패나 실수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인류역사상 이만한 평등과 자유, 정의와 풍요를 실현한 나라가 없었으며, 지구상에서 이만큼 자유와 기회의 횃불을 든 나라가 없었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미국을 긍정적으로 보는 애국심 교육을 시작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오사마 빈 라덴은 지난 1998년 “민간인이건 군인이건 미국인과 그 우방을 죽이는 것이 모든 이슬람교도들의 책무”라고 말했고 9.11 공격 직후에는 “신이 축복하사 이슬람의 첨병들이 미국을 파괴했다”고 기뻐했다. 지난해 12월 카불의 폐허에서는 서구에 대한 생화학전과 핵무기 사용을 구체적으로 담은 알카에다 자료가 발견되었다.
빈 라덴을 위시한 회교 과격파의 주장은 이슬람권 대다수의 정서를 대변한다. 그들이 종교의 이름으로 저지르는 악을 저지하고, 미국내에 팽배하는 회의주의를 일소하기 위해 싸워야 한다고 베넷은 주장한다.
윌리암 베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