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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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불법체류자 체포

2002-09-09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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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민법 김성환 변호사

만약 당신이 늦은 밤 프리웨이를 과속으로 달리다 경찰이 잡혔다면 우선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당신이 적법한 체류신분을 갖고 있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것이 화근이 되어, 불법체류 신분이 노출되고, 그 결과 추방이라도 되지 않을까 지레 걱정이 앞서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지금은 포스트 9.11이 아닌가? 그렇지만 단언컨대 이런 걱정이란 한낱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플로리다 제외한 49개주 이민법 단속 안해
체포 자체가 월권 행위 … 불법성 따져야


불법 체류자라고 해서 과속으로 걸렸다고 해서, 그 자리에서 체포되어 추방되는 일은 없다. 더구나 아무 잘못도 없는 상황에서, 단순히 불법체류자처럼 보인다고 불심검문을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것은 캘리포니아주나 뉴욕주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고, 전국 어디에서나 한결 같다. 그렇게 말하면 최근 연방 법무부가 경찰을 포함한 주정부 산하 지방사법 기관도 이민법을 집행할 수 있다고 유권 해석을 하지 않았느냐고 할지 모른다. 지방 경찰도 이민법을 집행하고, 불법체류자를 단속할 수 있다고 한 것은 연방 법무부의 풀이일 뿐이지, 이 해석을 곧이곧대로 지방 경찰이 집행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연방 법무부가 지방 경찰에게 이민법을 집행하도록 명령할 위치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연방 법무부가 각 주에 있는 지방 경찰이 이민법을 집행할 수 있다고 해석했더라도, 지방 경찰이 반드시 연방 법무부의 해석을 쫓아 단순 불법체류자의 체포 같은 일을 할 의무가 없다. 만약 연방 법무부가 지방 경찰이 이민법을 집행하도록 강요하러 든다면, 이것은 곧 연방 헌법 2조가 보장하고 있는 주 고유의 주권을 침해한 결과가 된다.
그렇다면 지방 경찰이 이민법을 집행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연방정부와 별도로 독립된 권한을 갖고 있는 주는 자신들이 원하면 이민법을 집행할 수 있다. 현행 이민법은 주 정부가 원하기만 하면 주정부가 연방 법무부와 양해 각서를 만들어 이민법을 집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렇지만 플로리다를 제외하고 나머지 49개 주는 주 경찰이 나서서 이민법을 집행하지 않는 것이 관행이다. 대표적인 예가 캘리포니아이다. 캘리포니아 주 법무부는 비록 불법체류자라고 하더라도 단순히 추방시킬 목적으로 체포할 수 없다고 해석한 바 있다. 다른 주도 이점에서는 사정이 비슷하다.
9.11 테러범이 암약했던 플로리다는 다른 주들과 달리 최근 연방 법무부와 양해 각서를 만들었다. 이민법이 규정에 따라 플로리다 주는 연방 법무부와 일정한 협정을 맺었을 뿐만 아니라 20명 가량의 사법기관에서 일하는 요원들에게 이민법 교육을 받게 했다. 플로리다가 이민국과 이런 협정을 맺었다면, 플로리다주에 사는 불법체류자는 큰 일이 난 것이 아니냐고 걱정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 플로리다주가 연방 법무부와 이런 내용의 협정을 맺었다고는 해도 아무 경찰이나 이민법을 집행하도록 한 것도 아니고 겨우 20명 가량 이민법 교육을 받은 요원들이, 그들이 판단하기에 국가 안보를 위협하거나 테러혐의가 있는 불법체류자만 단속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지방 경찰이 이민법을 집행하려고 시도했던 사례가 있었다. 그렇지만 하나같이 심각한 후유증만 남긴 채 흐지부지됐다. 이민법 단속에 나선 민중의 지팡이들이 치안 유지라는 본연의 의무도 충실하게 수행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나아가 이것 때문에 송사를 당하는 일 마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이미 LA, 뉴욕, 시카고 등 대도시 시장들은 지방 경찰이 이민법을 집행하는 것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치안 유지가 그 본연의 의무인 지방경찰은 이른바 커뮤니티 폴리싱을 새로운 모토로 삼고, 서비스 제일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느닷없이 지방 경찰이 이민법을 집행하겠다고 팔짱을 걷어붙인다면, 커뮤니티 구성원의 상당수에 달하는 불법체류자가 경찰의 치안 유지 노력에 협조할 리가 만무하다.
만에 하나 단순히 불법체류를 하고 있다는 이유로 경찰이 체포되었다면 어떻게 할 수 있는가? 첫째, 지방 경찰이 권한 밖의 행위를 한 만큼 경찰의 체포행위 자체의 불법성을 따질 수 있다. 한 걸음 나아가 경찰의 불법체포를 주장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인권 유린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다. 불법체류자라고 하더라도 이렇듯 구제의 길이 넓게 열려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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