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짖지 않은 개

2002-09-0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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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시각

▶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 포스트

셜록 홈스의 뛰어남을 보여주는 장면 중 하나가 살인 사건이 일어난 밤 개의 이상한 행동을 지적한 것이다. 수사관이 그 날 개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고 말하자 홈스는 "바로 그것이 이상한 일"이라고 설명한다.

지난 1년 간을 돌아볼 때 가장 중요한 사건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9·11 테러 이후 회교 근본주의자들의 성난 목소리가 아랍권을 뒤흔들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실상은 침묵의 계속이었다. 알 카에다는 별개의 문제다. 오사마 빈 라덴의 조직은 타격을 받았을 지는 모르지만 다음 공격을 위해 숨죽이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과거에도 한번 테러를 저지르고는 수 년 간 기다렸다 다음 일에 착수했다.

알 카에다는 수 천명으로 이뤄진 광신자 집단이다. 빈 라덴이 9·11 테러를 저지른 것도 회교권에 과격파의 세력을 늘리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 1년 간 그를 변호한 회교 정치인이나 주요 언론은 없었다. 이스라엘의 군사 행동이나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 1979년 이란 혁명으로 절정을 맞았던 급진 회교주의는 빛을 잃고 있다.


10년 전 상황과 비교해 보자. 알제리에서는 회교 근본주의자들이 선거에서 이겼고 터키에서는 회교당이 집권을 앞두고 있었다. 이집트는 회교 극렬분자의 난동으로 관광 산업이 문닫을 위기에 놓였고 파키스탄에서는 회교 성직자들이 회교 모독법을 제정하게 만들었다. 호메이니는 살만 루시디에게 사형 언도를 내렸다.

현 상황을 보자. 이란에서 성직자들이 권력을 잡고 있기는 하나 경멸 당하고 있다. 알제리와 이집트, 터키, 파키스탄에서 회교 극렬분자는 맥을 추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이들을 체제 안에 수용한다면 이들은 신비로운 존재에서 지방 정치인으로 전락할 것이다. 회교 운동 단체는 지금 잠잠히 있다. 그러나 잠잠히 있어 가지고는 혁명을 이룰 수 없다. 누군가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이들이 잠잠한 이유는 간단하다.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는 것이다.

물론 중동 사람들이 현 상황에 만족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근본주의가 더 이상 해답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70~80년대 시골에서 도시로 올라와 회교를 안전판으로 삼았던 청년들은 이제 중년으로 접어들고 있다. 분노하고는 있지만 서방 TV와 상품에 익숙해 있는 신세대들은 근본주의가 해결책이 아니라 환상임을 안다.

그렇다고 모든 문제가 끝난 것은 아니다. 공산주의도 매력을 잃어가면서 더 테러에 의존했다. 그러나 미국은 미래를 비관할 필요가 없다. 역사는 물라들 편에 서 있지 않다. 아랍권을 개혁하는 것은 희망이 없는 일이 아니다. 서방 체제에 맞설 수 있는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정치적 탄압이 줄어들고 경제 개혁이 이뤄진다면 테러리스트와 광신도들도 발붙일 곳이 없어질 것이다. 한 때 자살 공격을 감행하던 일본이 이제는 컴퓨터 게임을 만들고 있다.

테러와의 전쟁이 한참인 지금 밝은 앞날을 내다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적은 중병에 걸려 있다. 처칠이 1942년 말한 것처럼 아직 끝은 아니며 끝의 시작도 아니지만 테러와의 전쟁의 서전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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