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앨라배마에서 생긴 일

2002-08-1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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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 허버트<뉴욕타임스 칼럼>

귀하가 만약 신생아 살해 1급살인 혐의로 세 명의 피의자를 기소하려면 아기가 정말로 살해되었다는 사실을 입증할 의무가 있을까?

아니다. 앨라배마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그 아기가 실제로 존재했었다는 사실은 어떻게든 입증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아니다. 앨라배마에서는 그렇지 않다. 피고인들이 가난한, 저능의 흑인들이라면 그럴 필요가 없다.

"이건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일"이라고 버틀러라는 작은 마을의 변호인인 릭 헛친슨은 말했다. 그는 가상의 유아 살인혐의로 15년형을 살고 있는 멘델 뱅크스의 변호인이다.

헛친슨에 따르면 지난 1999년 뱅크스의 아내 빅토리아가 별도의 사건으로 구속된 후 석방 가능성을 노리며 임신했다는 주장을 한 것이 발단이었다. 둘 다 저능인 뱅크스 부부는 사이가 나빠 90년대 중반 별거했다.

임신 주장에 따라 빅토리아 뱅크스는 의사의 진찰을 받았지만 그녀는 내진을 거부했고 의사는 임신이 아닌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의사가 진찰을 했는데 그 의사는 태아 심장박동을 들었다고 보고하면서 더 이상의 검사는 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 충분해서 1999년 5월 빅토리아는 보석금을 내고 석방되었고, 그 해 8월 다시 구금되었다. 그런데 그녀에게는 낳은 아기도 없고 출산했다는 증거도 전혀 없었다. 치안당국이 속아넘어갔던 것일까? 아기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치안당국이 몰랐던 사실, 알려고 들지 않았던 사실이 있다. 빅토리아는 1995년 양쪽 나팔관 결찰수술을 받아 임신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난처해진 수사관들은 멘델 뱅크스, 빅토리아의 자매이자 역시 저능인 다이앤 터커를 소환해 집중 심문에 들어갔다. 심문이 끝날 즈음 세 명의 관련자들은 모두 아기가 태어난 후 그들 셋이서 죽였다는 자백을 했고, 1급 살인혐의로 기소되었다. 유죄평결이 나면 사형 아니면 가석방 없는 종신형감이었다.


아기가 정말로 태어나서 살해되었다는 증거가 있느냐고 내가 담당검사에게 물었다. 그의 말은 "그들이 그렇게 말했다"는 것이었다.

그게 전부냐고 물었더니 "아기가 그 여자 뱃속에 없었다. 그 여자가 감옥에서 나갈 때는 뱃속에 있었는데 그들이 아기를 죽였다고 말했을 때 보니 아기는 그 여자 뱃속에 없었다. 그만하면 좋은 증거이다"는 것이었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세 명의 피고인들은 재판전 합의를 통해 가상의 아기의 죽음에 대한 과실치사를 인정했다.

그러나 뱅크스는 계속 무죄를 주장했고 그의 변호사들도 포기하지 않았다. 교회와 자선단체들을 통해 기금을 마련, 권위 있는 불임전문 의사로 하여금 빅토리아를 진찰하게 한 결과 나팔관 결찰수술이 효과적이어서 빅토리아는 임신을 할 수가 없으리라는 의견을 받아냈다.

지난주 앨라배마 항소법원은 이 케이스에 명백한 부정의가 개입됐다며 멘델의 유죄인정을 기각했다. 그런데도 뱅크스는 여전히 교도소에서 형을 살고 있고, 검찰은 앨라배마 대법원에 상고를 계획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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