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들이 뭐 길래”

2002-08-1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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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서울에선

▶ 안영모<언론인>

요즘 서울 정가에선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 후보의 아들 병역문제로 난타전이 한창이다. 이 후보 아들 둘이 군대에 가지 않은 내막에는 부정한 거래가 있었다는 민주당의 ‘앙코르 쇼’가 등장하면서부터다. 꼭 5년 전 이맘 때, 김대중-이회창 두 후보가 자웅을 겨룰 당시 잘 나가 던 이 후보 지지도를 느닷없이 곤두박질시킨 문제의 쟁점이다.

민주당 측이 한번 재미 본 이 문제를 다시 꺼내들고 공세에 나선 이유는 묻지 않아도 알만 하다. 집권에는 성공했지만 김대중 대통령의 국가 경영이 신통치 않고 두 아들의 권력형비리마저 겹쳐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주체하지 못하던 민주당은 그 동안 대선 필패론(必敗論)에 매몰돼왔다. 노무현 후보로서는 도저히 이회창 후보를 이길 수 없다는 전의상실인 셈이다. 하지만 권력을 쥐고 있는 쪽이 그렇게 호락호락 물러앉을 리가 있겠는가. 병역시비의 재탕은 말하자면 ‘이회창 죽이기’의 제1탄일 뿐, 2탄, 3탄이 발사되리란 말이 정가에 파다하다.

‘앙코르 쇼’ 흥행에 성공할까
신분과 과거 행적이 모호하기 이를 데 없는 어떤 사람이 나타나 이 후보 아들 비리를 주장하는 양심 선언을 하고 민주당이 이를 받아 정치 문제화하면서 급기야 검찰고발로 이어져 사건은 진흙밭 싸움으로 확대됐다. 한국 사회에서 병역문제는 국민 감정에 불을 당기는 매우 섬세하고 미묘한 사안이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군대에 가야하는 개병주의가 반세기 동안 시행되면서 아들을 둔 모든 어머니들은 이를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군대간 아들의 안전을 위해 두 손 모아 기도하고들 있다. 한데 부유하고 권세 있는 집안의 자제들이 때론 돈으로, 때론 권력을 동원해서 병역 면제를 받고있다는 사실에 대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왔던 것이다.

민주당이 지금 병역비리 문제를 재탕하는 것도 이 나라 어머니들의 감정이 5년 전과 같으면 같았지 덜하지 않다는 확신 때문이다. 따라서 병역시비에 불을 당길 수만 있다면 이 ‘앙코르 쇼’는 또다시 공전의 히트를 칠 것으로 믿고 있다. 이런 판이니 한나라당은 민주당의 ‘리바이벌 쇼’를 저지하는데 당운을 걸었다. 이 후보 자신이 결백을 주장하면서 사실일 경우 대통령 후보를 사퇴하고 정계를 은퇴하겠다는 배수진을 친 것도 밀리면 죽는다는 긴박성 때문이다. 일부 국회의원을 다시 뽑는 재선거에서 압승을 했지만 이 문제는 정권 탈환의 아킬레스건임에 틀림없다.

아들 열 부럽지 않은 한국의 딸들
비리 여부가 드러나면 어느 한 쪽은 치유불눙의 상처를 입게 될 것이다. 아마도 대선판과 정치판이 휘딱 뒤집히는 사태로 발전할 가능성도 높다. 그러나 흑백이 가려지기란 좀처럼 쉽지 않아 보인다. 만약 긴가민가한 상태로 미궁에 빠질 경우 양쪽의 득실은 어떨까? 민주당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아니 ‘반타작’은 할 것으로 믿고 있다. 비리설의 여진을 계속해서 우려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문제에 관한 한 이 후보측은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손해의 폭을 얼마만큼 줄이느냐가 문제다.

병역비리를 둘러 싼 정치권의 싸움을 지켜보면서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딱히 필자뿐이 아닐 것이다. “한국의 집권자들 치고 아들 문제로 골치를 썩지 않은 이가 있었는가. 김영삼씨는 둘 째 아들의 비리로 “신한국 건설 깃발”에 먹칠을 했고, 김대중씨도 목하 아들들 문제로 “실패한 대통령”이라는 라벨을 달지 않았는가. 아들을 군대에 보내지 않은 탓으로 대권을 목전에서 놓친 이회창씨는 다시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고---어디 그들뿐이랴. 멀리는 이승만씨가 그랬다. 이기붕씨의 아들을 양자로 삼아 서울 법대에 불법 입학시켜 야단이 났다. 박정희씨 역시 마약의 구렁텅이에서 헤매는 아들 문제로 타계 후에도 가문의 불명예를 감내하고 있는 판 아닌가. 그럼에도 아들이 뭐 길래 한국의 산모들은 득남하려 저 야단들인가.”

한국 부모들이 아들 선호하기는 세계에서 둘 째 가라면 서러워 할 정도다. 아들을 얻기 위해 치성을 드리고 온갖 약제를 쓰고 여차직하면 낙태도 불사하는 사회 병리 현상이 만연하고 있음은 비밀이 아니다. 하지만 요즘 한국에선 농반진반의 말들도 오간다. “아들 좋아해 봤자 군대 보내야하고 늙을 막에 며느리 눈치나 보는 게 그렇게도 소원인가? 딸이 백배 낫다” 이런 말은 결코 농담이 아니다. 실제로 한국의 아들들보다 딸들이 훨씬 우성임은 기록이 말해 준다.

요즘 미국의 LPGA를 석권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낭자군을 보라! 그 아름다운 자태와 녹녹치 않은 투지는 한국 남아들을 무색케 하고있지 않은가. 권력형비리니, 병역비리니 하고 그 알량한(?) 아들들 문제로 고민에 빠진 정치 지도자들은 요즘 무슨 생각에 싸여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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