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낙관론 대세 불구 곳곳에 적신호

2002-08-0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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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멘터리 21

▶ 집 값 거품인가 아닌가

지금 미국 경기의 생명선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집 값이다. 주택가는 지난 5년 동안 평균 30% 정도 올랐다. 이는 평균이고 가주 등 지역에 따라서는 2배 이상 오른 곳도 적지 않다. 투자가들이 2000년 3월 이후 증시에서 날린 7조 달러의 절반 정도를 집 값 상승이 만회해 줬다.

주택가 상승은 심리적 안정감을 가져다 줄뿐 아니라 재융자를 통해 돈을 빼 쓰는 것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실질적인 경기 부양 효과를 가져다 준다. 전문가들은 집 값이 올랐을 때의 부양 효과가 주가보다 2배 이상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실업률의 증가와 기업 투자의 증발에도 불구하고 미 경제 활동의 2/3를 차지하고 있는 소비가 이만큼 이뤄지고 있는 것은 오른 집 값 덕분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지금 미 국민의 최대 관심사는 사상 유례 없는 부동산 호황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낙관론자들은 ▲증시에 혼이 난 투자가들이 안전한 투자 수단으로 부동산을 택하고 있고 ▲낮은 금리 때문에 집 값은 올랐지만 실질 페이먼트는 줄었으며 ▲이민자 유입으로 주택 수요는 늘어나는데 집 지을 땅은 없다며 앞으로도 호황이 계속되리라고 내다보고 있다.

이중 이민자 유입은 가장 설득력이 없는 주장이다. 1965년 케네디 이민법 제정 이후 30여 년 간 이민자가 미국에 몰려들지 않은 해는 한번도 없었다. 남가주 부동산 값이 폭락했던 90년대 초에도 이민자는 계속 왔다.
지금 미국인의 주택 소유율은 68%로 사상 최고다. 집보다 아파트에서 살기를 원하는 사람, 주택 구입 능력이 없는 사람을 제외하고 살만한 사람은 거의 샀다는 이야기다.

소유자가 늘어나는 것에 비례해 소유의 질은 떨어지고 있다. 10여 년 전까지 집을 살 때는 20% 정도 다운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제는 첫 주택 구입자의 평균 다운페이먼트가 3%에 불과하다. 또 자기 수입의 25% 정도를 모기지 페이먼트로 내는 것이 원칙이었다. 이제는 미국인들 사이에서도 수입의 40%를 내는 경우도 흔하다. 역시 사상 최고 수준이다.

페이먼트 부담을 줄이기 위해 고정 대신 변동을 택하는 사람도 1년 사이 2배가 늘어 30%에 이르고 있으며 15년 간 이자만 내는 론도 인기를 끌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은행의 주택에 대한 융자 기준은 갈수록 느슨해지며 불량대출의 가능성은 커지고 있다.

집 값을 궁극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소득과 금리다. 가주의 경우 연간 소득은 4~5% 느는데 집 값은 20~30%가 올랐다. 이런 사태가 언제까지나 계속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부동산 과열을 부추기고 있는 최대 요인은 낮은 금리다. 모기지를 포함하는 장기금리는 40년 래 사상 최저를 기록하고 있다. 40년 래 처음 있는 일이 언제까지나 계속된다고 보기보다는 역사적 평균에 가까운 수준으로 반등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것이 이성적인 태도다.

소득과 집 값과의 상관관계를 조사한 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내 120개 지역 중 45%가 과대평가 돼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가주를 포함한 서해안과 보스턴 등 북동부 지역이 대표적인 과대평가 지역이다. 하이텍 붐과 함께 가장 많이 올랐던 샌프란시스코와 시애틀 등의 집 값은 이미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고가 주택은 잘 팔리지 않는다.


부동산 경기 하강을 알리는 또 하나의 신호는 건축 관련 주식의 폭락이다. 건축주는 향후 건축 경기를 점치는 주요 지표다. 다른 주식들이 죽을 쑤던 지난 2년여 동안 건축주만은 호황을 누려왔다. 대표적인 건축 회사의 하나인 NVR 주는 작년 9월 150달러에서 지난 5월 400달러까지 치솟았다가 최근 250달러 선으로 폭락했다.

지난 160년 간의 미국 증권과 부동산의 움직임을 조사한 한 자료에 따르면 다소의 시차는 있지만 양자는 대부분 같이 움직여왔다. 주가가 정점에 달한 후 2년 뒤부터 부동산이 하강 곡선을 그린 경우가 많았다. 올해가 바로 2년째 되는 해다. 1989년 일본 주식이 최고치를 기록한 후에도 일본 부동산은 1년여를 더 올랐다가 10년째 폭락, 지금은 그 때의 절반 수준이다.

아직까지 부동산 폭락을 예측하는 목소리는 소수다. 기껏해야 완만한 상승을 점치는 것이 고작이다. 그러나 부동산이 활활 타고 있던 89년 일본이나 가주 부동산 폭락을 예측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부동산 업자나 건축업자, 융자업계는 말할 것도 없고 정치인과 월가 모두 부동산 시장의 활황과 자신의 이익이 직결돼 있다. 이들에게서 공정한 판단을 기대하기보다는 게와의 다툼을 가재 재판관에게 맡기는 편이 낫다.

호황과 불황의 반복은 시장 경제의 움직일 수 없는 진리다. 한번 정점에 오른 것은 반드시 바닥으로 내려간다. 부동산도 여기서 예외가 될 수 없다. 정점에 가까울수록 낙관론의 목소리는 크고 이상 열기를 합리화하기 위한 갖가지 이론이 등장한다. 2000년 하이텍 버블이 절정에 달했을 때의 신 경제론이 좋은 예다.

집을 사두면 돈을 번다는 것은 이제 삼척동자도 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이를 알 정도가 됐다는 것은 이미 트렌드가 정점에 가까웠음을 알리는 신호다. 세상은 삼척동자가 쉽게 돈을 벌 수 있을 만큼 어수룩한 곳이 아니다. 부동산의 정점이 언제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과열된 것은 항상 더 과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군중심리에 휩싸이기보다 위험을 알리는 경종에 귀를 기울일 때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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