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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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비관론은 위험

2002-07-30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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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시각

15~20년 전만 해도 증시는 경제를 움직이는 주요 변수가 아니었다. 1980년엔 미국인의 13%만이 주식이나 뮤추얼펀드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수많은 미국인이 증시에 참여하고 있고 그들의 부와 복지가 시황에 영향을 받고 있다. 그래서 증시가 나빠지면 경제뿐 아니라 사회 정치적 파장이 예전 같지 않은 것이다.

가장 큰 위험은 경제의 버팀목인 소비자 신뢰 및 구매의 감소현상이다. 6월 실업률이 5.9%로 2000년 말 3.9%에 비하면 높지만 2차 대전 이후 기준을 놓고 보면 그다지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생산이 증가하고 일자리가 계속 창출되면 증시하락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 상황은 얼마든지 쉽게 올 수 있다. 퓨 리서치 센터의 보고서에 따르면 증시가 소비자 신뢰도에 미치는 영향은 과거 20년 동안보다 최근 4년 간이 더 컸다는 점이다.

지난주 현재 주식은 2000년 3월 정점과 비교하면 48%가 하락했다. 8조2,000억달러에 달하는 돈이 사라진 셈이다. 이 가운데 3조7,000억달러 손실이 올해 생긴 것이다. 게다가 약 2조1,000억달러가 7월 중 날아가 버렸다. 투자한 주식의 가치가 1달러 상승하면 소비자들은 3~6센트 정도 지출을 더 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주식이 올라가면 이 같은 비율로 소비가 늘고 덜어지면 소비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주식 1달러당 3센트의 소비증감 패턴을 가정하면, 8조2,000억달러 손실은 2,500억 달러의 소비감소를 의미한다.


증시 자체로 볼 때 가장 위협적인 것은 심리적 공황이다. 놀란 투자자들은 주식을 팔고 뮤추얼펀드를 처분한다. 이로써 증시는 내려가고 이는 공황 상태를 더욱 심하게 만들다. 주식매각은 더 늘어난다. 무시무시한 현상이다.
역사적으로 뮤추얼펀드에 자금을 넣어둔 투자자들은 증시가 나빠도 쉽사리 인출을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손실을 기정 사실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테러 이후 인출된 뮤추얼펀드는 300억달러로 전체의 1%에 불과했으며 속히 다시 되돌아갔다.

하지만 역사는 반복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오늘의 투자자들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과거의 투자자들과 반드시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6월 뮤추얼펀드 기금에서 140억달러가 인출된 것은 부정적인 징후이다. 주간 통계에 따르면 인출사태는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증시가 안정을 되찾고 성장세로 돌아선다 해도 작금의 대규모 손실은 사회적 정치적 반향을 일으킬 게 분명하다. 이미 50대 후반~60대 초반의 노동자들이 은퇴를 연기하거나 포기하는 사례가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지난주 뉴스위크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4%가 조기은퇴를 못할 것으로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1년 3월 조사에서는 31%가 이 같은 답변을 했었다. 또 30%는 자녀를 원하는 대학에 보내지 못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답변했다. 지난번 조사 때보다 10% 포인트가 상승한 수치다. 정치적 파장은 당연한 일이다.

미래가 불투명하지만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몇 가지 가치 있는 교훈을 도출해 낼 수는 있다. 증시는 인터넷과 소위 ‘신경제’에 최면 걸린 투자자들로 지나치게 고평가됐다. 끝 모를 낙관주의가 팽배하면서 닷컴 기업들을 중심으로 과잉투자가 진행됐다. 그러나 시장은 비교적 제한돼 있는데 투자가 폭주하니 수익이 줄어들고 급기야 경쟁에서 도태된 기업들이 사라졌다. 월드컴은 두드러진 한 예이다.

지금 위험한 것은 근거 없는 비관주의다. 이 또한 지나친 낙관주의만큼 위험하다. 주식을 팔고 소비자가 지출을 줄이면 제품 생산과 기업의 수익은 감소하게 마련이다. 그러면 해고가 늘고 다시 증시는 나빠지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호경기가 남긴 문제들을 감안하면 아무래도 경제가 추가 침체를 겪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사무실 공실률이 급등하고 있다. 파산한 기업들이 부동산을 시장에 내놓기 때문이다. 지난 18개월 동안 시카고에서는 9%에서 15%로, 샌프란시스코에서는 3%에서 20%로 각각 사무실 공실률이 증가했다. 그러나 여기에 언론, 정치인, 사회지도층이 피해자들 입장에만 서서 기업을 도매금으로 싸잡아 비난해 분위기를 더욱 악화시킨다면 경제 피해는 한층 심화될 수 있다. 분위기는 아주 중요하다. 낙관주의가 과장됐던 것처럼 비관주의도 지나친 모습을 보인다면 원치 않는 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다.

로버트 새뮤얼슨/워싱턴포스트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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