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랑의 감정 되살아나 삶의 희열"

2002-07-06 (토)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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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여성

▶ 여든살에 연애소설 낸 김수형씨.

팔순의 나이에 장편소설 ‘운명 그리고 사랑’(오선출판사, 상·하)을 펴낸 여성이 있다. 매릴랜드에 거주하는 김수형씨. 80세에 첫 작품 출간도 화젯거리지만 ‘옛날에 내가...’로 시작하는 노인의 고리타분한 훈계가 아닌 연애소설을 창작한 감수성이 주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꿈많던 여고시절 밤새 책을 읽느라 다음날 시험을 망칠 정도로 문학소녀였던 김씨에게 목전에 다가온 팔순이란 나이는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을 부채질했다. 1998년 작품 구상부터 2000년 완성까지 2년에 걸친 글쓰기 작업은 쉽지 않았다. 막상 창작 의지를 굳히긴 했지만 한국문단의 흐름은커녕 한글 철자법과 문법이 가물가물하더라는 김씨는 여고시절 즐겨 읽었던 문학이론서를 다시 들춰가면서 작품구상에 들어갔다.

"작품배경을 광산촌으로 정했지만 시골생활을 해본 적이 있어야죠. 한참 고민을 하고 있으니 조카가 광산촌을 그린 이문열씨 작품을 슬그머니 건네주더라구요. 성의는 고마웠지만 들쳐보지도 않았어요. 대신 한국의 광산촌을 직접 찾아 나섰죠. 타인의 경험을 참고한 작품이 아닌 나만의 창작 소설을 원했으니까요"


요즘 젊은이들이 사용하는 유행어까지 소화하려고 노력했던 김씨지만 ‘짱-하는 장면’을 두세 군데 넣어달라는 출판사의 제의에는 완강했다.
"짱-하는 장면요? 짙은 핑크무드 감도는 거 있잖아요. 요즘엔 그런 장면이 없으면 책이 안 팔린다며 출판사 사장이 소위 연애소설이라면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노골적인 성 묘사는 필수라고 설득했지만 소설을 내려고 마음먹은 건 세상에 내놓는다기보다 평생동안 간직해왔던 꿈을 실현하고 자손들에게 어머니로서, 할머니로서 오래 간직될 선물을 주고 싶어서라는 뜻을 분명히 했죠"

이 책의 주인공은 사촌동생과 사랑에 빠지는 동규라는 남자다. 뜻하지 않게 마주한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죄의식에 시달리는 주인공 동규를 끊임없는 번민과 질곡에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운명을 사랑으로 포용하고 승화시키는 모습으로 묘사했다.

"글을 쓰면서 고뇌하는 주인공이 클로즈업되는 순간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는 김씨는 남편과의 연애시절 이후 50년만에 자신의 책 속 주인공과 다시 연애감정에 빠진 듯 얼굴마저 살짝 붉혔다. 6.25 전후 출판사에 근무했던 김씨는 동갑내기 직장동료인 지금의 남편 최대성씨를 만나 5년간의 열애 끝에 결혼한 연애지상주의자. 책을 완성했다는 기쁨보다 바쁜 일상사에 파묻혀 잊고 지냈던 ‘사랑’이란 감정이 되살아났음에 삶의 희열을 느끼는 듯 했다.

경북여고를 졸업하고 대구와 부산 등지에서 10년간 교편생활을 했던 김수형씨는 70년 도미했으며 2남1녀를 두고 있다.
<하은선 기자>eunseonha@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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