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공짜 유감

2002-04-13 (토)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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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 성 칼 럼 세상사는 이야기

각종파티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행사로 래플(raffle) 티켓 추첨이 있다. 10~20달러을 투자하고서는 상품에 눈이 어두워 늦도록 까지 자리를 지킨다. 어느 모임이든지 성질 급한 한국인들은 밥만 먹으면 빨리 갈 궁리부터 하는데, 그나마 경품추첨이 마지막에 있으면 자리를 지키는 이들이 많아 주최측에서는 마지막 순서에 래플 추첨을 하곤 한다.

나는 어떤가하면 덜 미안 할 정도의 경품을 체면치레로 사곤 기대를 안 하는 편이다. 기대도 없는 만큼 재수도 따라주질 않았었다. 작년연말의 동창회 파티에선 후배가 받은 공짜 헤어 컷 상품권이 내게 양도되었다. 한인타운 가까운 곳에 사는 내가 사용할 찬스가 많다고 행운을 내게 양보한 것이다. 내 평생엔 그런 횡재도 처음이므로 받는 순간부터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신주단지처럼 핸드백에 넣고 다니면서 뿌듯했다. 한인타운에 새로 생긴 고급 미용실이었다. 며칠 전 나의 공짜 표를 꺼내 흐뭇한 마음으로 보고있는데 깨알 만한 글씨를 발견했다. ‘발행일로부터 3개월 유효함’ 놀라 바로 미용실에 예약했다. 공짜를 놓치면 안되겠기에.
회사 일도 미루고 찾아간 미용실은 의외로 한산했다. 꿈의 시설이라고 광고를 때리더니만.


넓디넓은 호화시설에 손님은 오로지 나 하나. 미용사는 열 명도 넘는데 손님이 와도 시큰둥하다. 그 중 제일 씩씩하게 생긴 실장님 이 내 담당이란다. 미용실에 웬 실장? 했으나 금방 이해되었다. 미용실은 주인장이 실장이겠지.

이 실장님 너무 수단이 좋게 생겨 약간 불안했다. 나는 맘이 약해 수단가에겐 잘 넘어간다. 단수를 알아채도 그 앞에서는 말을 못한다. 집에 돌아오면서 혼자 씩씩거리는 형이다. 이런 타입의 실장님께는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지 싶었다.

한국사람들은 광고용 공짜 표를 뿌려놓고는 그걸 가져가면 홀대를 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실은 공짜표…가져왔는데요” 이실직고하니 “아유 괜찮아요.” 싫은 표정 감추느라 애씀이 역력했다. 말하고 나니 그래도 안심이 되었다.

나중에 돈 계산 시 덜 민망해도 되므로. 그런데 실장님 이란 분, 커트 할 생각은 안하고 나를 가만히 보더니 “안 되겠네요. 숱이 너무 많아서. 눈썹 좀 다듬어야겠다.” 거의 반말조. “글쎄요…” 망설이는 순간 가위질 벌써 시작되고. 한가한 나머지 서비스로 깎아 주려나보다 마음대로 생각했다. 전문가에게 온몸을 맡기고 졸기 시작했다. 미용실의 의자는 앉기만 하면 졸리운 마력이 있다.

“어머나. 깔끔하고 세련돼 보여요.” 호들갑에 놀라서 깨니 거울 속의 낯선 아줌마. 눈비비고 보니 내가 아닌가? 숯 검댕이 눈썹이 없어지고 날렵한 갈매기가 두 마리. 눈썹 수정을 했기로서니 이렇게 얼굴이 달라질 수가 있는지 신기했다.

집에 당도하니 아들과 아비 스테레오로 “왜 그렇게 했어?” “이상해 엄마 같지 않아.” 완전 실패작이란 소리. 요즘은 눈썹 위에 검정 덧방을 치는 일로 신경을 쓰고있다. 눈썹을 그리지 않으면 못나리자?가 따로 없기 때문이다. 돈도 낼만큼 내고…즉 바가지 쓰고 애꿎은 눈썹 털만 날리고. (공짜표를 내고도 거금60불에 팁 10달러=70달러을 내는 계산이었다.) 따지려다가 동창회 욕 먹힐까봐 땡큐를 연발하며 그냥 나왔다는 것 아닌가?

나이 먹을수록 외모는 평준화 되어간다는데. 이 나이에 무슨 미모? 무슨 청춘?을 되찾겠다고. 순전히 실장님만 욕할 수 없는 것이 눈썹수정을 강력히 말리지 못한 내 탓도 있기 때문이다. 봄 바람난 아줌마의 속셈과 공짜 좋아하는 욕심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봄날을 망치고 있다. 아아 볼수록 어색한 나의 얼굴. 공짜 너무 좋아할 일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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