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국은 뭘 하고 있나

2002-04-02 (화)
크게 작게

▶ 잭슨 딜/ 워싱턴 포스트 사설

작년 조지 W. 부시 대통령 취임과 함께 아버지 부시의 큰 업적인 중동 평화를 위한 노력을 재개하리라는 기대가 높았었다. 그러나 이제 중동 사태는 부시 행정부의 유고슬라비아로 기억될 것 같다. 미국은 겁 많고 무책임한 수수방관으로 위험한 상황을 재난으로 만들어 버렸다. 발칸은 첫 번째 부시 행정부의 주요 외교 현안이었다. 1991년 세르비아의 침략을 막기 위한 조그만 조치조차 취하지 않음으로써 첫 부시 행정부는 수년 동안 유혈 참극이 일어나는 길을 열어줬다.

이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인들이 15개월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흉폭하게 서로를 죽이고 있음에도 부시 행정부는 아버지 때와 똑같이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아라파트 와 샤론이 전쟁을 시작한 것은 사실이지만 수십 년 간 이 지역에서 평화 브로커 노릇을 하던 미국은 이해할 수 없는 무관심으로 유혈사태 발생에 일조했다.

진작부터 깨달았어야 할 진리를 체니 부통령이 말한 것은 지난주가 되어서였다. 그것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게만 맡겨둬서는 중동 문제 해결은 요원하다는 것이다. 체니가 뒤늦게 깨달은 “미국말고는 이 문제를 풀 사람이 없다”는 사실은 심오한 진리가 아니다.


부시 행정부는 전임자는 물론 전문가와 세계 각 국 지도자들로부터 1년 내내 이 소리를 들었다. 유고 정책 실패의 책임자인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이번 중동사태에서도 유약하고 무능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파월 국무장관은 사망자 수가 수백 명에서 수 천명으로 늘어나고 있음에도 작년에 딱 한번 중동을 방문했다. 돌이켜 보면 중동 사태가 악화 일로를 치닫기 시작한 것은 그가 중동을 방문하면서부터다.

당시 팔레스타인인의 디스코 자살 공격 등 중동 평화 중재에 미국이 개입해야 한다는 압력은 최고조였다. 그 때 파월은 자신이 중동을 방문한 것은 아랍과 유럽 정부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거기 도착해서는 중동 평화 정착을 위한 합리적인 방안을 내놨지만 그것이 샤론 이스라엘 총리의 반발에 부딪치자 금새 후퇴했다.

미국은 그 후 테러 방지 실패 책임을 물어 아라파트를 고립하는 것까지는 잘 했으나 중동 평화를 위한 비전을 제시하지도 못했고 샤론에게 과격한 방법을 쓰지 말라는 압력을 넣는데도 실패했다. 샤론은 평화 협상 추진을 비웃기라도 하듯 팔레스타인 측에서 테러를 중단하자 팔레스타인 인을 암살하는 것으로 맞섰다. 아라파트의 라이벌 테러리스트가 이스라엘을 공격하면 그는 아라파트에게 보복을 가했다. 국무부는 가끔 항의했지만 백악관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아들 부시는 왜 중동 사태 개입을 꺼리고 있는 것일까. 전임자 클린턴의 지나친 개입에 대한 반발이거나 아버지 부시가 너무 이스라엘에 압력을 넣다 선거에서 떨어진 점을 염려하는 지는 모르나 어쨌든 그의 불개입 결정은 역사적 실수로 기록될 것이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