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남편 길희석씨 이야기>

2002-03-30 (토)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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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랜스 길희석·미향씨 집에는 다섯 대의 피아노가 있다. 리빙룸에 있는 그랜드 피아노는 학생들의 작은 리사이틀용이고, 다이닝룸에 나란히 놓인 2대의 그랜드 피아노는 ‘2대의 피아노를 위한 곡’을 연습할 때나 협연곡을 연습할 때 오케스트라 반주용이고, 이층에 있는 업라이트 피아노 2대는 철은이와 예은이 연습용이다.

게다가 패밀리룸에 올갠까지 놓여 있으니 가족수보다 피아노가 더 많은 셈인데 이 모든 피아노가 다 필요하다는 것이 길씨부부의 설명. 엄마, 아들, 딸 3명이 모두 같은 시간에 연습할 때가 결코 적지 않기 때문이다.

위아래층 세군데서 각자 다른 피아노 소리가 흘러나올 때 아버지에게 방해는 안될까? "연습하는 사람들은 각자 자기 연주에 몰두하기 때문에 괜찮고, 나는 워낙 음악을 좋아하니 괜찮습니다. 20여년간 하도 들어놔서 이제 왠만한 피아노 소리는 자장가 같아요. 전화할 때만 화장실에 들어가죠"라고 호탕하게 웃는 길희석씨는 자신을 ‘음악가족을 위해 태어난 남편’이라고 소개한다.


사실 길미향씨가 10년만에 연주자로 설 수 있게된 것이나, 아들 딸 모두 협연 실력의 피아니스트로 성장한 배경에는 길희석씨(47)의 절대적인 헌신과 수고가 100% 스며들어 있다.

길씨는 보험인으로서의 직업에 충실하면서도 일년에도 몇차례나 열리는 대회다, 협연이다, 리사이틀을 모두 쫒아다니며 챙기는 세 사람의 매니저 노릇을 소리 한번 내지 않고 해왔다. 연주 스케줄 잡고, 프로그램 짜고, 팸플릿 인쇄하고, 포스터 수백장을 타운 곳곳에 붙이는 일은 물론이고, 대개 장거리(또는 외국 경연대회)를 뛰어야하는 그 모든 리허설과 행사의 픽업에서부터 아이들 운동 데리고 다니는 일까지가 모두 그의 잡이었다.

그런 일들은 아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의 리사이틀 때도 당연히 반복되기 마련이었는데 그 와중에도 저녁 6시의 가족식사 시간을 철저히 지켰다고 한다. "다시 일하러 LA로 나가는 한이 있더라도 6시 땡 치면 집에 들어와 아이들과 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하버드에 가있는 아들 철은이는 요즘도 거의 매일 그 시간이면 전화를 걸어와 마치 한 식탁에 있는 것처럼 대화를 나누죠"

철은이는 대입지원 에세이에 ‘My Family’란 제목으로 가족 이야기를 썼는데 그걸 읽어본 고교 카운슬러가 "이게 사실이라면 대단히 멋진 가족이지만 매우 비사실적인 스토리이므로 에세이 내용을 재고해보라"고 조언하더란다. 비사실적이지만 사실이었던 그 에세이를 고치지 않고 보낸 철은이는 하버드에 합격했다. 현재 11학년인 딸 예은이는 내년에 음대로 진학, 어머니의 뒤를 이어 피아니스트가 될 꿈을 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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