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테러 피해자 차별하다니

2002-03-3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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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클 킨즐리/ 워싱턴 포스트)

9.11 테러 후 연방 의회는 피해자와 그 유가족들을 돕기 위한 60억달러의 기금을 마련했다. 이는 한 가정 당 200만달러에 해당하는 거액이다. 그러나 세계무역센터는 1993년에도 테러를 당했었다. 그 때는 이런 기금이 없었다. 그 때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이제 자기들도 보상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1995년 오클라호마 테러로 피해를 입은 유가족들이나 아프가니스탄 전쟁 수행 중 사망한 군인 유가족들도 그렇다. 9.11 테러 피해자들을 돕다 순직한 경찰과 소방관들이 보상받아야 한다면 왜 우리는 제외되어야 하는가 반문하고 있는 것이다.

모두 좋은 질문들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좋은 대답은 없다. 정확하지만 이 질문에 대한 나쁜 대답은 이 기금이 사실은 비행기 회사를 돕기 위한 것이란 점이다. 이 돈을 받는 사람은 비행기 회사를 상대로 소송할 권리를 포기해야 한다.


이 기금이 테러와 싸우다 쓰러진 자를 위한 것이란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9.11 테러 피해자들은 테러와 싸우다 희생된 것이 아니라 그들이 희생되면서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우리가 그들을 도우려는 것은 단지 그들에게 동정이 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테러리스트가 아닌 나쁜 놈들에 의해 피해를 입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9.11 펀드는 미국인의 정의감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개개의 경우에는 지나치게 신경을 쓰면서도 일반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너무 둔감하다. 세계무역센터가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공격당해 피해를 입으면 수백만달러를 주지만 자기 집에 가만히 있다 집이 무너지면 한푼도 주지 않는다.

이런 불공평한 현실이 변호사 집단과 민주당의 유착관계를 설명해 준다. 이것은 사랑 받지 못하는 이익단체와 돈 없는 정당의 편의에 의한 결혼으로 묘사된다. 일리는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변호사 집단은 민주당이 법으로 하지 못하는 정의를 법원을 통해 실현해 주고 있다.

소송이 비싸고 비효율적이며 어떨 때는 불의를 초래한다는 공화당의 주장은 옳다. 케이토 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한해 미국이 변호사 비용으로 쓰는 돈만 91억달러에 달한다. 그러나 공화당 주장은 대부분의 소송이 정의 실현에 도움을 준다는 것을 잊고 있다. 공화당은 변호사에 의해 이뤄지는 주먹구구식 사회정의 실현을 제대로 된 사회정의로 바꿀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의사에 대한 소송 제한을 국민 개보험제로 대체하는 것이 한 예가 될 수 있다.

개별적 정의실현에 치우쳐 일반적 정의 실현을 게을리 하는 것이 모두로 하여금 ‘나는 피해자’임을 주장하게 만들고 있다. 9.11 테러 피해자들은 이런 피해자 중 대표격이다. 이들은 요즘 자기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집단 행동을 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9.11 테러 피해자 모임’이란 단체 대변인은 다른 테러 피해자들도 당연히 보상받아야 하지만 이 기금에서 돈이 나가는 것은 반대한다고 밝혔다. 우는 소리 하지 않아도 정의가 실현되게 할 수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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