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할리웃 역사와 환상

2002-03-2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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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시각

▶ 뉴욕타임즈 사설

지난 주말 제 74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 참석한 원로 흑인 배우 시드니 포이티에의 격정적 눈빛에선 그가 말했듯이 “어려웠던 시절”을 어렵지 않게 감지할 수 있었다. 포이티에는 그가 손에 쥐고 있는 공로상의 모습처럼 당당히 서서 TV 시청자들의 눈을 응시하며 말을 했다.

그는 인종차별이 심했던 할리웃 영화계에서 자신의 오늘이 있도록 도와준 감독과 연출자들에게 감사했다. 그는 이날 오스카 남녀 주연상을 모두 흑인배우가 차지하는 광경을 보며 감회에 젖었다.

이날 흑인여성으로선 처음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할리 베리는 눈물을 흘리며 “오늘 밤 문이 열렸다”고 말했다. 문이 완전히 열렸는지 아니면 조금 열렸다 이내 꽝 닫힐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포이티에는 그동안 인종차별로 인해 재능이 있으면서도 적절한 배역을 맞지 못해 뜨지 못한 흑인 남녀 배우들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지난 63년 흑인으로 사상 처음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받은 포이티에만큼 ‘할리웃의 벽’을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그는 이번 일로 인해 수십년간 지속돼 온 차별관행이 사라지리라고 믿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를 도와준 감독과 연출자들에 대한 정중한 감사를 통해 할리웃의 차별관행이 시정되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할리웃은 잔혹하리만큼 냉정한 상업도시다. 그래서 오스카상 수상자들이 가족과 동료들뿐 아니라 에이전트와 변호사들에게도 감사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아카데미상 시상식은 할리웃 비즈니스의 현실을 엿볼 수 있는 마당이다.

포이티에의 영광은 각고의 노력을 필요로 했지만 잠재력이 있는데도 ‘피지 못한 꽃’이 한 둘이 아니다. 할리웃 비즈니스는 우리의 꿈을 우리에게 되돌려주는 것이다. 포이티에는 이날 시상식에서 우리의 꿈에 가려진 현실은 서서히 변화한다는 점을 주지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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