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4월이면 70세를 맞는 박복수씨는 요즘이 마치 인생의 전성기인양, 안 그래도 소녀같은 얼굴이 활짝 피었다.
작년말 한국의 문학잡지 ‘수필과 비평’에 작품 ‘행 그리고 불행’이 당선돼 문인으로 정식 등단한 데 이어 지난달 주위 친지, 문인들이 모여 성대한 축하잔치를 열어주었고, 오는 31일엔 총영사배 사진촬영대회에서 재미한인사진작가협회의 발전에 공헌한 공로패도 받게돼 경사가 겹쳤다.
그러나 가장 기쁜 사건은 30년전 썼던 시 ‘어머니께 바치는 글’에 김학송씨가 곡을 붙인 노래를 지난 7일 CD 취입한 것. 박씨는 이 곡을 자신의 등단축하 감사예배에서 30년만에 처음 발표했는데 반응이 너무 좋아 음반취입으로 이어졌다. 노래는 고음 처리가 매끄러운 백의자씨가 불렀다.
"1972년 현부인대회에서 열녀상을 받은 어머님을 위해 쓴 작품이었어요. 시상식에서 낭독했더니 김학송씨가 이북에 두고온 어머님 생각이 난다며 곡을 붙여주셨죠. 참 아름다운 노래였는데 좋은 성악가를 못 만나 그동안 묻어두었습니다. 이번에 노래 들으며 우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좀더 많은 사람에게 들려졌으면 하는 작은 바램으로 CD에 담았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누구보다 봄바람이 즐거운 박씨는 사실 방송인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부터 3년동안 정동에 있는 KBS 중앙방송국에서 성우로 일했던 그녀는 서울대 사범대를 졸업하고 62년 꿈많은 유학생으로 도미했으나 UCLA에서 만난 남편과 결혼하면서 사회활동의 꿈을 접었다.
그러나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면서도 토요화가회의 초대회장으로 파리 르살롱 초대전에서 동상을 수상했고, 재미한인방송인협회 회장, 재미한인사진작가협회 부회장, 미주기독교방송국 방송위원등으로 조용하지만 활발하게 커뮤니티의 문화사업을 위해 일해왔다.
박씨를 아는 사람들은 언제나 주위를 환하게 만들어주는 그녀의 고운 얼굴이며 말씨, 부드러운 매너와 기품이 자석같은 매력을 발하며 유명무실했던 단체들을 일으켜 세우는데 많은 공헌을 했다는 치하를 잊지 않는다. 그로 인해 받은 공로패만도 여러개.
이번 등단에 대해 박씨는 "심훈선생과 괴테에 미쳐 화신 네거리 한성도서에서 살다시피하던 소녀시절이 생각난다"고 감회에 젖으며 "교회 문예지에 전도를 위해 조금씩 쓰기 시작한 것이 좋은 결실을 맺었는데 기회가 되면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과 같은 한국여성의 일생을 소설로 담아보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박복수씨는 은퇴한 남편 박영곤씨와 함께 사진촬영 다니는 일과 극동방송 성가단의 소프라노와 베이스 단원으로 즐겁게 노래하는 삶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