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돈 맛 아는 성직자

2002-03-0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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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봉현 편집위원

군침 도는 엿을 멀찌감치 매달아 놓고 출발선에서 모두 천으로 눈을 가린 뒤 심판의 호각소리에 뛰어가 따먹고 되돌아오는 게임은 학교 운동회에서 단골메뉴로 등장해 흥을 돋운다. 목표물의 위치를 정확히 가늠하고 달리면 엿을 따먹을 수 있지만 방향이 틀어지면 허공만 헤집다 만다. 눈을 가리고 목표물에 도달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가를 가르치는 게임이다.

성직자는 물질적 풍요로움보단 정신적 충만함을 설파하며 사람들을 이끄는 영적 지도자다. 한인들을 대상으로 목회를 하는 성직자 대다수가 이 본분을 잊지 않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일부 성직자들이 물욕에 눈이 가려 있다는 사실이다. 종교비자를 받을 수 있도록 스폰서를 서주겠다며 수만달러를 요구하거나 함부로 일을 부리며 생색까지 내는 일부의 ‘빗나간 목회’가 피해자들의 증언으로 속속 드러나고 있다.

미국에 오고 싶어 종교비자에 목을 건 사람들은 약자다. 이들의 약점을 잡아 돈을 거두려는 심보는 너무나 ‘반 성서적’이다. "상대방의 아킬레스건을 교묘히 이용해 너의 배를 불려라"는 구절이 성경 어디에 있는가. 성직자 자신의 주머니를 채우지 않고 교회 선교사업에 쓰기 위한 것이라 해도 정당화될 수 없다. "남의 약점을 이용해 선교자금을 모아라"하는 내용이 있으면 제시해 보라.


선교는 돈으로 하는 게 아니다. 역사에 기록된 훌륭한 성직자 중 돈으로 목회한 사람은 없다. 재정이 넉넉하면 편리할 지 모르겠지만 선교에 ‘검은 돈’을 사용하면 신성모독이 될 뿐이다. 남의 귀감이 될 언행이 바로 선교의 핵심 재원이다. 요란한 선교 대신 소박한 선교가 아쉬운 지금이다. 예수가 고기 낚는 베드로에게 요구했듯이 성직자는 자신을 비우고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내어놓아야 한다. 이것이 올곧은 목회의 첫 걸음이다.

어떤 이유에서건 무자격자에게 종교비자 스폰서를 서주는 성직자는 법치사회의 시민으로서도 자격미달이다. 교계경력을 허위로 기재하거나, 스폰서의 재정능력을 부풀려 보고하거나, 있지도 않는 유령교회를 통해 서류를 신청하는 등의 방법을 얼마나 남용했으면 연방이민국에서 이를 집중 감사한다고 하겠는가.

성직자가 치외법권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물론 이곳 성직자 가운데 상당수가 한국의 교계와 연계가 있다보니 "아무개를 잘 부탁한다"는 말을 차갑게 거절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잘 못 보이면 관계에 금이 가고 만일 나중에 아쉬운 일이 생겨도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계산도 함 직하다.

하지만 ‘법치’를 으뜸으로 여기는 미국에서 목회를 하면서 편법, 탈법을 무신경하게 자행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처사다. 평신도들에겐 "신실한 신앙인으로, 떳떳한 사회인으로 생활할 것"을 강조하면서 뒤로는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은근슬쩍 법망을 피해 가는 것은 이중인격에 다름 아니다. 종교이민을 미국입국과 영주권 취득의 방편으로 여기는 사람들의 구멍난 법의식에 편승한 일부 성직자는 위법 공모자나 진배없다.

반성서적이고, 탈법적인 종교비자 부조리는 ‘반인륜적’이기까지 하다. 보수도 받지 못하고 일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불법체류자들이 신분이 노출될까 무서워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가정부나 농장노동자로 일하며 노동을 착취당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약점 잡은 사람의 횡포에 속을 끓이고 있는 것은 똑같다. 약자를 보호하는 게 성직자 본연의 길이다. 이들을 돕기는커녕 돈벌이 기회로 삼으려 한다면 입만 벌리면 떠들던 바로 그 ‘지옥 불’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교계에는 이런 저런 협회가 많다. 이젠 이들 협회가 나서야 한다. 회원 성직자가 이런 일을 하고 있다면 단단히 경고하고 재발을 막아야 한다. 감싸고돌면 환부는 절대 치유될 수 없다. 존경받을 만한 대다수 성직자들이 도매금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일부 ‘상습범’의 명단을 공개하는 결단도 고려해야 한다. ‘미꾸라지’ 몇 마리가 교계 전체를 흐리지 않도록 손을 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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