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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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와 김정일, 선과 악의 함수

2002-02-2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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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서울에선

김대중 정권의 안보관과 국가이익의 우선 순위는 무엇인가? 부시 미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말했다해서 푸르르 역정을 낸 DJ 정권과 집권 민주당의 반응을 보면서 새삼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현 정권과 일부 집권 세력들은 부시를 ‘반(反) 통일’ ‘전쟁광’ 정도로 생각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나라 안보의 굳건한 동맹국 원수를 가리켜 ‘악의 화신’이라고 삿대질을 해댈 수 있겠는가. 한번 냉정히 생각해 보자. 지금 이 순간, 우리 안보에 절대 필요한 존재는 미국인가, 북한인가.

또 김정일 정권은 진정 대남 무력 통일정책을 버렸는가. 최근 서울에 조성된 일연의 반미 분위기는 한 핏줄의 김정일 정권이 대남 전략을 수정했으며 따라서 남한의 안보는 전적으로 북한 손에 달려 있다고 믿는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부시의 방한을 전후해서 사상 가장 격렬한 반미 데모가 전국 도처에서 다발로 일어 날 수 있었겠는가.

아니 미국 대통령이랍시고 되어먹지 않은 소리를 했다면 삿대질 아니라 더한 비난을 퍼부을 수 도 있다. 동맹 파트너를 의도적으로 해코지하려했다면 이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한데 이번 경우 문제가 된 부시의 말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무엇이 잘못됐으며 내심 한국에 막대한 손해를 주려고 한 것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부시 발언을 보면 이렇다. "북한은 주민은 굶어도 대량 살상 무기와 미사일로 무장하고 있다. 북한 등은 테러국가와 함께 ‘악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미국은 이들의 위협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자, 그렇다면 어떤 대목이 잘못됐다는 것인가. 북한 주민들이 굶고 있다는 대목인가. 이건 누가 보아도 맞는 소리다. 지난 수 년 동안 북한에선 아사자가 속출했고 연간 수백만톤의 식량을 세계로부터 원조 받아 겨우 굶주림을 면하고 있다는 점은 다 아는 일이다. 그럼에도 대포동 미사일과 핵 그리고 생화학 등 대량학살무기 개발에 온 국력을 쏟아 붇고 이를 중동 국가들에 판매하고 있다는 점 또한 확인된 사실 아닌가.

혹여 DJ의 동반자 김정일을 이라크나 이란의 ‘괴수’와 한데 묶어 ‘악의 축’이라고 표현한 게 마음에 안 든다는 말인가. 이라크의 후세인이나 이란의 회교 교조주의자들과는 달리 ‘착한 지도자 동지’인 김정일을 왜 함께 싸잡아 묶어 불똥을 만들었느냐는 비판인가. 부시 행정부는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했다. 각종 군사 정보 데이터의 판독결과라는 것이다. 만약 미국 주장이 오류라고 한다면 그것을 뒤집을 반론과 증거를 제시하면 될 터인데 북한은 상소리로 욕만 해대고 있다.

또 짚고 넘어 갈 게 있다.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부시의 말이 잘못된 것이라면 이 지구상에서 혹독한 공산 독재왕조를 건설하고 인민의 자유를 말살한 김정일 정권을 뭐라고 불러야 하나. ‘선(善)의 화신’ 이라고 찬양하란 말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김정일 정권이 저처럼 길길이 뛰고있으니 전쟁이라도 날까 두려워해서인가. 그러나 그것도 괜한 소리다. 한번 생각해 보라. 북이 전쟁을 일으킨다면 그것은 분명 미국에 대한 도전을 의미한다. 과연 그들은 초강대국 미국의 코털을 뽑을 용기가 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그렇다면 남는 문제는 뭐며 전쟁 공포증을 촉발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핵심은 하나로 좁혀진다. DJ의 햇볕정책에 대한 미련이다. 김정일을 화내게 하지 말아야겠다는 강박관념이 미국을 멀리한 결과를 몰아왔다. 매우 위험하고 우려할 만한 사태발전이다.

최근 야기된 DJ정권과 부시 행정부간의 갈등은 부시 방한을 계기로 해소된 것처럼 발표됐다. 그러나 그것은 외견상의 관측에 불과하다. 고집 센 그 텍산(텍사스 사람)은 방한 중 시종 웃음을 띄고 있었지만 불쾌감을 씻어내지는 못한 듯하다. 집권당 국회의원이란 사람이 자신을 "악의 화신"으로 매도하지 않나, 급진파들은 미 상공회의소로 처 들어가 성조기를 훼손하고 반미 데모를 강행하지 않나, 6-25 동란 당시 미군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만행 주장이 꼬리를 잇지 않나, 어떻든 DJ 정권 출범 이후 발생한 반미 분위기와 일연의 사태들이 심상치 않다는 심증을 안은 채 서울을 떠났을지도 모른다.

부시정부가 한국 내 반미 분위기를 DJ정권과 연관시켜 생각하고 있다면 우리의 국익 차원에서 보통 일이 아니다. 안보와 통상 어느 것 하나 미국을 등지고선 우리에게 득이 될 게 없기 때문이다. 자존(自尊)은 좋다. 그러나 힘도 명분도 없는 자존은 약자의 반항일 뿐이다. DJ 정권의 안보관은 현실을 떠난 레토릭이요, 국익의 앞줄에 집권자의 정책 미련이 버티고 있다, 이것이 모두(冒頭)의 자문에 대한 필자의 자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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