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국사람과 무중구

2002-02-2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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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 포먼 칼럼

오래 전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 나는 본의 아니게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어 주었다. 1972년 충청북도 시골 중학교에서 일하면서 주말이면 버스를 타고 시골 마을을 구경하러 다녔다. 버스에서 내려 정류장에 있는 가게에서 음료수를 사려고 하면 어디에서 나타나는지 수십 명의 아이들이 모여들어 나를 둘러싸곤 하였다.

아이들은 마치 외국사람들을 감지하는 전파 탐지기라도 달고 있듯이 어느 마을에서나 똑 같은 일이 일어났다. 나를 둘러싼 아이들은 "미국사람, 미국사람" 하고 손가락질을 하며 웃었다. 마치 큰 구경거리라도 생긴 것처럼 아이들은 흥분된 목소리로 "미국사람, 미국사람" 하면서 먼지를 일으키면서 나의 뒤를 좇았다. 키가 크고 피부색깔이 하얗고, 팔에 털이 많고, 똥그란 눈을 가진 이색적인 서양사람이 오락거리가 없었던 시골아이들에게 큰 구경거리가 되었음에 틀림없다.

관광지에서도 어김없이 나는 구경거리가 되어 비슷한 일이 일어났던 것을 기억한다. 기념탑에 대한 설명을 열심히 읽고 있을 때, 알지 못하는 사람이 다가와서 사진기를 가리키면서 제스처로 자기와 함께 기념탑 앞에서 사진 찍기를 요청한다. 웃으면서 부탁에 승낙을 하고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하면, 나더러 어깨를 팔로 감싸는 포즈를 요구하곤 한다. 요구한대로 생전처음 보는 사람과 어깨동무를 하고 활짝 웃으면서 사진을 찍는다.


아마 그때 모델이 되어 찍었던 사진들이 많은 한국사람들의 사진첩에 간직되어 여러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한국과 같은 단일민족이 사는 나라에 외모가 다른 외국인들은 마치 어두운 방에 켜놓은 전등불처럼 환히 드러나기에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을 것이다.

지난여름 르완다여행 중 한국에서 있었던 일들이 홍수처럼 밀려왔다. 르완다 수도 키갈리 뒷골목을 걷고 있을 때였다. 어디에서 소문을 듣고 왔는지 순식간에 수십 명의 아이들이 우리들을 포위하였다. 30년 전에 한국아이들이 "미국사람, 미국사람" 하고 외치면서 손가락질을 하였던 똑같은 모습으로 아프리카 아이들이 "무중구, 무중구" 하고 웃으면서 우리들을 따라다녔다. 이번에는 한국사람들이 ‘무중구’로 불리며 구경거리가 되었다.

르완다 말로 무중구는 ‘하얀 피부색’이라는 말이다. 아프리카 아이들의 눈에는 유럽계인 나의 얼굴과 동양인인 아내의 얼굴이 다른 점을 구별 못하는 것 같았다. 외국인은 무조건 ‘무중구’라고 불렀다.

통역하여 주던 프랑크에게 궁금하여 물어보았다.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라고 말하였다. ‘아프리카 사람들’ 과 ‘나머지 사람들’로 구별된다 라고 설명하였다. 아프리카 사람들처럼 피부가 까맣지 않으면 모두가 ‘무중구’ 라고 말했다.

르완다에서 아내와 나는 야외 집회에 참석하여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설교할 기회가 있었다. 통역을 맡아 주었던 프랑크가 나와 아내 사이에 서서 통역을 하였다. 나는 우리 셋을 가리키면서 ‘무지개 가족’이라고 청중들에게 소개하였다. 아프리카사람, 아시아 사람, 유럽사람이 하나님 안에서 한 형제가 되어 서있는 모습이 무지개처럼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종족과 피부색깔 차이는 인식하기 나름이다.
30년 전에 한국 길거리를 걷고 있었을 때 나는 한국 아이들의 구경거리였다. 아프리카에서 아내와 아프리카 땅을 걷고 있을 때, 무중구인 우리들은 아프리카 아이들의 구경거리였다.

만약 아내와 나, 그리고 프랑크가 화성으로 여행가서 화성의 길거리를 걸어간다면 우리 셋은 분명 구경거리가 될 것이다. 화성아이들은 우리들의 피부색깔을 구별하지 못한 채. 그러나 그들과 다른 모습의 우리들을 가리키면서 "지구인, 지구인" 하고 소리치며 웃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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