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한인사회서 약 400만달러 모아야 할 판
동포재단 눈치보는 일부 단체장들 빈축 사
상세한 계획 제시한 뒤 컨센서스 도출해야
’재외동포센터 건립안’이 한인사회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한국 외교통상부 산하 재외동포재단이 서울에 재외동포센터를 짓겠다며 해외 한인들의 모금운동을 촉구하고 있고 한인들은 이의 성사여부에 반신반의하며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국 체류 및 비즈니스 활동에 도움을 줄 동포센터 건립에 대해 한인들이 시큰둥해 하는 것은 이 프로젝트에 심각한 문제점이 내포돼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지난해 7월 서울에서 해외한인회장단 동포센터건립 분과위원회에 소속된 50여명이 동포센터의 건립 모금과 효용성 등에 대해 열띤 논쟁을 벌였다. 중국과 러시아 한인회장단은 "동포센터가 있으면 한국을 방문하는 한인들에게 큰 편익을 줄 것"이라며 센터 건립에 찬성했으나 미국과 일본의 한인회장단은 그 효용성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동시에 건립기금 마련에 난색을 보였다.
내놓을 게 별로 없는 중국과 러시아 한인사회로선 모금운동을 한다 해도 돈은 적게 내고 혜택은 똑같이 볼 수 있으니 이들의 지지는 당연하다. 하지만 미국과 일본의 한인사회의 경우 모금 규모가 엄청나 부정적인 태도를 고수한 것이다. 결국 동포센터 건립안은 표결에 부쳐져 적은 표 차이로 부결됐으나 이 안건을 넘겨받은 총회가 "기금 확보에 노력하자"는 선에서 마무리해 이 사안의 핵심인 ‘모금 방안’을 비켜간 것이 문제의 발단이 됐다.
모금 문제의 불씨는 정부가 "성남시 일해재단 내 3만평 부지를 내놓고 5억원을 정부예산에 책정했으니 총 공사비 400억~500억원(3,000만~3,800만달러)은 해외 한인사회가 모금해야 한다"는 방침을 세운 데서 점화됐다. 동포재단측은 "이 부지는 시가 수천억에 달하는 알짜배기 땅이며 정부가 종자돈을 마련했으니 이젠 해외 한인사회가 성의를 보일 때"라고 주장하지만 한인사회는 이처럼 ‘어마어마한 성의’를 보일 여력이 없다.
LA 한인사회의 규모를 감안해 약 400만달러 정도 모아야 한다는 게 한인회측의 계산이고 보면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다. 동포재단측은 "올해 100억 정도 모아주면 내년도 예산에 5억원 정도의 예산을 다시 편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100억원은 "남의 아이 이름 부르듯" 쉽게 떠버릴 수 있는 돈이 아니다. 권병현 동포재단 이사장이 지난주 LA 한인단체장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밝힌 대로 2003년 12월까지 건축허가를 받지 못해 사업이 백지화되는 것을 막으려면 올해 100억원을 모은 뒤 내년에 나머지 공사비를 추가 모금해야 하는데 이는 현실성이 희박한 시나리오다.
일부에서 "한인사회가 일정액 모금으로 성의를 보이면 나머지는 한국 정부가 알아서 해주겠지"하는 의견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재단측은 이같은 낙관론을 떠받쳐줄 어떠한 확언도 하지 않았다. 권 이사장이 워싱턴 DC, 뉴욕 등지를 돌며 홍보활동을 편다지만 현정부는 레임덕에 시달리고 있고 차기 정부가 현정부의 사업에 얼마나 호의적으로 나올지 미지수이므로 한인사회가 호락호락 ‘모금 약속’을 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동포재단으로부터 후원금을 받았거나, 후원금을 신청 중이거나, 앞으로 받으려는 일부 단체장이 이날 간담회에서 ‘동포센터 건립 지지’를 선언한 것은 돈 몇 푼 때문에 권 이사장에게 잘 보이기 위함이라는 오해를 받을 만하다. 커뮤니티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기보단 자기 단체의 이익만을 앞세운 처신이었다면 깊이 반성할 일이다.
한국정부가 땅을 내놓았고 해외한인들을 위한 센터라는 취지에 공감, 모금을 시작해 어렵사리 수십만달러를 모았다고 치자. 목표액에 모자라 정부가 난색을 표하고 재원마련에 실패해 결국 센터 건립안이 백지화될 경우 모금액을 처리하는 문제가 중대 현안으로 불거질 수 있음을 간과해선 안될 것이다. 주인 없는 돈이 되고 불미스런 일이 재발할 소지는 얼마든지 있다. 기억에 떠올리기도 민망스런 폭동성금 때처럼 말이다. 결코 확신 없이 덤벼들 사안이 아니다.
동포재단측은 보다 구체적인 청사진을 들고 와서 한인사회의 협조를 구했어야 했다. 그동안 이렇다 할 홍보물을 보내온 적도 없다. 그 흔한 안내책자 하나 없이 이사장의 말만 믿고 거액의 모금 운동을 전개할 수 있다고 여겼다면 커뮤니티를 무시한 처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권 이사장이 간담회에서 "깜박 잊고 동포센터 설계도면을 숙소에 두고 왔다"고 했지만 여하튼 지지를 구하려던 단체장들과 커뮤니티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한 것이다.
같은 외교통상부 소속인 영사관측도 이 프로젝트의 성사 여부에 대해 논평을 자제하는 것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한인들의 한국에서의 활동도 중요하지만 LA에 변변한 센터 하나 없어 광복절 행사 등 주요 이벤트를 호텔을 빌어 치르고 있는 형편임을 감안하면 동포센터 건립은 우선순위에서도 밀린다.
무턱대고 동포센터 건립에 반대하자는 것은 아니다. 한인사회에서 언제까지 얼마를 모을 경우 한국 정부에서 어떻게 나올 것인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을 구한 뒤 커뮤니티에 이를 소상히 알리고 공청회를 통해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정부의 반응이 신통치 않고 애매 모호하다면 명분이 좋다고 해도 덥석 잡을 일이 아니다. 목적과 수단이 균형을 이뤄야 좋은 결과가 나오는 법이다. 모금만큼이나 한인사회를 시끄럽게 했던 일도 없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