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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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전염병 극복해야

2002-02-1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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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시각

▶ 해리엣 로빈스

지난달 팜스프링에서 열린 노텔 팜스프링스 국제 영화제서 내가 인상깊게 본 영화는 재일한국인의 정체성 문제를 폭력적이면서도 유머있게 그린 이사오 유키사다의 일본영화 ‘고’ (Go)였다.

한국배우 김민도 나오는 이 영화는 일본사람들이 자기들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하며 여러모로 시달리고 괄시받는 재일한국인들에 관한 얘기다. 이 영화는 영화제서 국제비평가상을 받았는데 일본고등학교에 입학한 싸움 잘하는 한국계 소년 수가하라가 주인공이다.

권투선수였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장차 링에서의 활약이 기대되는 수가하라는 그러나 한국계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일본인 급우들로부터 사고뭉치로 찍히게 된다. 수가하라는 일본소녀 사쿠라이와 사랑을 하는 사이이나 사쿠라이가 수가하라의 정체를 알게 된다면 과연 둘의 관계는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마침내 수가하라의 정체가 폭로되면서 그는 일본사회속에 만연한 편견을 반영하는 대혼란에 직면하게 된다. 얘기가 진행되면서는 세계적 현상인 광적인 민족주의의 형태를 목격하게 된다.

떠오르는 젊은 별인 유키사다감독은 인간은 핏줄과 배경이 아니라 인간자체로서 평가돼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가 문명의 이 단계에 이르렀을 때야 비로소 완전히 성숙한 것이며 또 세계에 만연한 적대감과 충돌없이 생존할 수 있다고 결론 내린다.

영화의 속도는 명쾌하니 빠르고 때로 폭력적이나 그것은 주제에 맞는 폭력이다.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는 폭력과 불신을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인간적 수준에서 사고와 행동을 평가해야 한다는 교훈을 이 영화에서 얻을 수 있다.

영화제 공동창립자인 드니스 프레그놀라토는 개막연설에서 “영화인들의 역할은 우리의 문화와 삶과의 차이를 반영하는 거울”이라면서 “이런 인간경험의 요소들을 표면으로 끌어올릴 때 우리는 변화와 갈등과 희망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고’는 이 같은 개념의 좋은 본보기다. 반드시 보고 기억해야 할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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