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재미있는 말

2002-02-0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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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 포먼 칼럼

이번 겨울학기에 침례교 신학대학에서 헬라어 강의를 들었다. 헬라어를 가르치는 교수는 닥터 노라는 한국인 교수이다. 4주간의 강행군 코스로 우리는 매일 만났다. 하루에 20개의 새로운 단어를 배웠다. 명사, 대명사, 동사 특히 수많은 형태의 분사형을 외우려고 하니 머리가 지근거렸다.

헬라어 동사는 수많은 분사형이 있기 때문에 초보자들은 똑같은 뜻을 가진 다른 모양의 단어들을 분별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예를 들어 헬라어 ‘luo’는 ‘to loose’(느슨하게 풀다)라는 뜻인데, 학기말 시험에 ‘loosing’이라는 한마디의 영어 단어를 48가지의 헬라어 분사형을 쓰라고 하였다.

많은 단어를 외워야 하는 헬라어 클래스가 지루하기도 하였지만 재미도 있었다. 클래스는 영어로 진행되었고, 배우는 내용은 헬라어이었고, 가르치는 사람은 한국 선생님이었기 때문에 세 가지 언어가 사용되어졌다.

닥터 노는 신학대학에 최근에 부임한 신참 교수이다. 본관 앞에 있는 주차장에는 이 학교에 오래 근무한 전임 교수들과 총장 이름이 새겨진 개인 주차장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닥터 노는 첫날 이 대학교에 왔을 때 자기를 환영하여 주는 대학의 배려에 감동하였다고 농담하였다.


주차를 하려고 캠퍼스 주차장을 돌아다니는데 ‘No Parking’ 이라고 자기 이름을 새겨놓은 주차장까지 준비하여 놓고 자기를 환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총장도 전용 주차장 한 곳뿐인데, 자기를 위하여 ‘No Parking’ 이라고 특별히 자기 이름까지 새겨놓은 주차 공간을 곳곳에 마련해 놓은 학교측의 환영에 감동하였다고 능청을 떨었다.

이 작은 농담은 ‘to loose’라는 헬라어 단어의 48가지의 파생어를 외우는데 지쳐 있었던 학생들을 잠시동안이나마 느슨하게 풀어주는 역할을 하였다. ‘No Parking’이라는 영어의 뜻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이 농담이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헬라어의 분사형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에게는 똑같은 말이 여러 가지의 의미를 함축해 사용되어지는 재담이 들어 있는 농담이기에 재미있었다.

헬라어를 번역하면서 재미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예를 들어 ‘영’(spirit)과 ‘바람’(wind)은 헬라어로 똑같은 말로 표현된다. ‘목소리’(voice)와 ‘소리’(sound)라는 단어도 헬라어로는 똑같은 단어로 표현된다. 요한 복음의 한 구절을 번역할 때 "영(Spirit)이 가기를 원하는 대로 움직여가고, 그 곳에서 목소리(voice)를 들었다"라고 번역할 수도 있고, "바람(wind)이 불어가기를 원하는 대로 움직여가고, 그 곳에서 소리(sound)를 들었다"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원어인 헬라어 단어에 함축된 의미를 영어나 한국말로 번역할 때 모두 옮기지 못하기 때문에 원어의 지식이 없이는 본문을 완전히 이해하기가 곤란하다.

쉬는 시간에 닥터 노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우리는 동음이의어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닥터 노는 다섯살 난 그의 딸아이의 이야기를 하였다. 하루는 그의 딸아이가 아주 진지한 표정을 지으면서 자기는 새처럼 날개가 없는데 어떻게 하늘을 날아갈 수 있느냐고 질문을 하였다.

"예수님을 믿으면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다"라고 딸아이가 아빠인 자기에게 설명하더라고 말했다. 닥터 노는 웃으면서 딸아이가 "하늘나라 간다 "(go to heaven)는 말을 "하늘을 날아간다"(fly in the sky)로 알아들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야기를 듣던 한국 학생들은 교수의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한꺼번에 웃음을 터뜨렸다. 한국말을 알아듣지 못한 나머지 학생들은 한국말로 ‘하늘’은 공중을 말하기도 하고 천국을 말하기도 한다는 설명을 듣고서야 농담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농담이 설명되어야 하면 더 이상 농담이 아니다. 이와 같은 재담이 담긴 농담을 들을 때 한국사람들과 동시에 웃음을 터Em릴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지 한국말을 진정으로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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