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뿌리깊은 반미주의

2002-02-0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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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시각

▶ (살만 루시디/뉴욕타임스)

예상했던 것처럼 테러와의 전쟁은 길고 힘든 싸움이다. 미국이 테러리스트를 비호하고 있는 나라를 다시 공격한다면 이제는 거의 틀림없이 혼자 해야 할 것이다. 군사적 승리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극렬 회교주의에 못지 않게 끈질기며 점점 더 확산돼 가고 있는 반미주의라는 적과 직면해 있다.
반가운 것은 요즘은 회교 근본주의자들에게 좋은 시절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테러 기지 하나가 사라졌을 뿐 아니라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을 제거하기 위한 쿠데타 계획도 수포로 돌아갔다.

전 세계가 아프간 전쟁의 교훈을 배우고 있다. 지하드라는 이름의 성전은 더 이상 지난해 가을처럼 매력적이지 않다. 테러 비호 국가들은 테러리스트 일부를 체포까지 하는 등 변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란은 아프간의 새 정부를 인정했으며 회교 광신주의에 가장 관대하던 영국마저 태도를 바꾸고 있다.

미국은 아프간에서 해야 할 일을 했으며 잘 했다. 나쁜 소식은 이것이 국제사회를 미국의 우방이 아니라 더 증오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아프간 전을 반대해 온 자들은 자신들의 예측이 모조리 틀린 데 대해 분노하고 있다. 미군은 러시아 군처럼 아프간에서 수모를 당하지 않았으며 공습은 효과를 봤다. 북부동맹은 민간인을 학살하지 않았으며 탈레반은 세력기반인 남부에서조차 힘없이 무너졌다. 동굴 속에 숨은 게릴라를 잡는 것도 그다지 힘들지 않았으며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 과도정부 수립에 성공했다.


반면 아랍과 회교권에서 자신들의 무력감을 미국 탓으로 돌리던 자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 심한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 팔레스타인 인들의 참상이 이런 감정을 부채질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내일 당장 이 문제가 해결된다 해도 반미감정은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반미주의가 부패와 무능, 탄압, 경제, 과학, 문화적 침체 등 회교권의 온갖 문제를 덮는 연막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슴을 치며 성조기를 불태우는 것을 존재 이유로 삼는 자들이 많다. 반미주의는 사실은 자기들도 원하는 것을 증오하는 척한다는 점에서 위선적이다. 편협함과 무지 등 반미주의자들이 미국을 두고 비난하는 것 중 상당 부분은 자신들에게 더 해당된다.

미국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회교권 밖에 더 많다. 지난 5개월간 유럽을 방문하거나 유럽 지도자들의 발언에 귀를 기울인 사람은 그 반미감정의 깊이에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서유럽의 반미주의는 회교권과 비교하면 심통에 가깝다. 회교권은 미국의 힘과 오만, 성공을 미워하지만 서유럽 인들은 미 국민을 깔본다. 런던 시민들은 미 국민을 성토하느라 밤을 지샌다. 미 국민들은 자국민의 안전만 생각하며 너무 애국적이고 살이 쪘으며 감정적이라는 것이다.

미국은 이런 적대적인 분위기 속에서 일방주의로 치닫기 쉽다. 그러나 미국은 의견을 모으기 위한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큰 권력과 부는 늘 인기가 없다. 지금은 미국이 어느 때보다 그 힘을 책임 있게 써야 할 때다. 다른 나라를 무시하고 일방주의로 나가는 것은 승리를 스스로 포기하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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