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을에 대한 기억들

2001-10-27 (토)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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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칼럼

▶ 김선영

여학교에 입학한 후, 처음 맞는 가을에 친구에게서 받은 그 굉장한 편지를 떠올리면 지금도 미소가 지어진다. 책갈피에 꽂아두어 바싹 마른 낙엽을 네 귀퉁이에 붙이고,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는 푸쉬킨의 시 구절을 비롯하여 알 수 없는 말들로 가득 찬 그 편지를 받고는 키가 부쩍 큰 느낌이었다. 그때도 그 편지가 허황되고 비현실적이라고 느끼기는 했지만, 그 가을 내내 낙엽을 열심히 주워 말렸고, 물론 편지에도 한 장씩 넣는 것을 잊지 않았었다.

대학 입시를 앞에 둔 어느 날, 아침 7시에 집을 나서면 두개의 도시락으로 점심과 저녁식사를 해결하고 보충수업까지 밤 9시가 되도록 학교에 붙잡혀 있어야 했던 때였다. 컴컴한 창 밖을 바라보며 가방을 챙기는데, 어느 반에선가 느닷없이 오보에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음악대학에 진학하고자 했을 어떤 아이가 부는 ‘님은 먼 곳에’는 전혀 예기치 못한 돌발사태였다.

그 밤에 학교가 떠나가게 유행가 가락이라니. 하지만 기습적으로 불어대는 그 소리에 아이들도, 선생님도 그저 손을 놓고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텅 빈 학교에서, 한 밤중에 울리는 ‘님은 먼 곳에’는 그렇지 않아도 불안하고 피곤에 절은 아이들을 자극했는지 훌쩍거리며 우는 아이들도 있었고, 아무 말 없이 묵묵히 복도를 빠져나가는 아이들도 있었다. 무언가 서러웠고,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혼자 책임져야 하는 인생 막중대사를 앞에 놓고 막막했었다. 그때, 황홀할 만큼 예쁜 나이였을 우리가 세상에 대해 가졌던 꿈, 그 자체가 먼 곳에 있던 님이 아니었을지… 고등학교 졸업반 그 가을은 오보에 음색으로, 마음 한구석에 쓸쓸한 이미지로 남아있다.


아직 떼도 자리잡지 않은 아버지의 무덤에서 만삭의 배를 안고 하염없이 앉아있던 어느 가을날도 있었다. 아버지의 말기 암 진단과 기다리던 아이의 임신을 거의 동시에 알게 되면서부터 임신기간 내내 아버지와의 이별을 준비하던 슬픔과 고단함은 굉장한 에너지를 요구했다. 가장 가까이서, 가장 사랑하는 두 생명이 내게서 떠나가고 또 나를 찾아오고 있었다.

임신 7개월이 되도록 체중은 늘지 않았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상실감이 뒤섞여 어떻게 하면 아버지의 영혼과 교감할 수 있을까 꿈속에서도 꺽꺽 울어댔다. 하지만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해바라기를 무덤 앞에 꽂아 놓고 꼬꾸라져 울다 일어난 그 가을 날, 여름의 열기를 거둬들인 비스듬하게 기운 햇살이 내게 살아있다는 건 얼마나 좋은 일이냐고, 살아서 슬픔을 느끼는 것 또한 얼마나 좋은 일이냐고, 속살거린 이후에는 내 뱃속의 아이가 쑥쑥 자랐던 것 같다.

돌이켜 보면, 가을이 아니라 세월이 나를 이만큼 키웠을 텐데, 왜 그런지 내 나이테는 가을에 모두 생겼지 싶다. 가령 도스토예프스키와 김지하, 카프카와 미시마 유키오를 처음 알던 때는 시기적으로 달라도 모두 어느 가을이려니 생각한다. 커피 맛을 제대로 알게 된 것도, 고도를 기다리듯 알 수 없는 무언가를 한없이 기다리며 스스로 외로워지기 시작한 것도, 가을일 거라고 생각한다. 첫사랑을 시작한 것도, 하느님과 눈맞춤을 시작한 것도, 그런 가을 어느 날 방황의 끝머리에서 느꼈을 존재의 허허로움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충격과 함께 찾아 온 2001년 이 가을은 어느 때 보다도 현실적으로 더 위태롭게 느껴진다. 테러와 전쟁과 불경기, 거기다 생화학전의 기미까지. 행복은 행복의 부재를 통해서만 존재하기 시작한다는 말, 진정한 행복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고 우리 속에서 탄생한다는 말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사회가 불안할수록, 안개 저 너머의 삶이 모호할수록, 작고 소소한 행복감이 절실해지기 때문일까.

며칠 전에는 웬만한 책이나 음악CD는 인터넷을 통해 사던 것을 오랜만에 직접 CD를 고르면서 마음이 따뜻해져 왔다. 사고 싶은 많고 많은 음악 중에서 이 가을에 어울리는 CD 10장을 골라 계산을 치르면서 또 잠시 행복해졌다. 음악을 돈으로 살 수 있다니, 그 자체가 너무 감사한 일이 아닌지. 딸애가 2년째 치아교정을 하고 있는 치과에도, 갑작스런 이모의 죽음으로 눈물 마를 날 없는 어머니께도,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에게도, 잔잔한 음악 한 소절 나눠 듣는 것으로 이 가을이 잠시라도 풍요로워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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