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입시를 치르고 난 겨울이었다. 합격기념으로 얻어 신은 빨간색 피겨 스케이트를 신나게 타고 있었다. 스케이트장엔 내 또래의 아이가 친구들과 함께 떠들썩하게 떠들고 있었는데, 그 내용을 가만 들어보니 중학교에 합격한 자랑을 하는 것이었다. 같은 동네 아이는 아니었는데 무척 아니꼽게 생각이 들었다. 아무려면 내가 들어간 학교에 비기랴 속으로 생각하며 얼굴을 기억해 두었었는데, 입학식 날 운동장에서 만났다.
내 친구 영수와 나는 그렇게 알게 되었고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함께 다니면서 어울렸다. 수학 여행 때 한방을 쓰게 된 인연으로 만든 여고 동창 계의 한 멤버로, 결혼기념으로 단체로 만들어 낀 커플링도 함께 간직하고 있는 오랜 친구이다. 내가 서울 근교 여학교의 가정선생을 처음 시작할 때도 격려하느라 학교까지 와 주었었다. 오래 전 한국을 떠나오면서 자주 만나진 못했어도 서로의 소식은 알고 지내는 터였다. 딸, 아들을 순서로 낳은 100점짜리 엄마이며 나이 40이 다되어 셋째 늦둥이를 보았다는 소식. 그리고 그 아이가 너무 예쁜 나머지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느껴 낙태 반대운동에 앞장섰다는 소식도 듣고 있었다. 무엇보다 기뻤던 것은 하나님을 알게 되고 성경공부에 몰두한다는 소식이었다.
한국 갔을 때도 열일 젖히고 만난 지가 얼마전인데 영수의 위암 소식을 들은 건 지난 7월이었다. 증세가 심상치 않아 수술을 서두른다는 전갈에, 병원으로 전화했더니 별일 아니라고 오히려 위로했었다. 그러나 상태가 급박하게 돌아갔다. 의사 남편도 손쓰기 어려울 정도로 퍼져있어 수술 못했다고 했다. 그 후의 통화에서는 담담하다며 침착하던 친구가 투병한지 석 달만에 마흔 다섯의 이른 나이로 하늘로 먼저 가버렸다.
친구가 세상 떴다는 소식을 들은 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카드라도 써서 보낼걸 전화로만 염려하던 나의 게으름이 미안했다. 친구가 아깝고, 남긴 세 명의 아이들이 안쓰러웠다. 책읽기에 비디오 보기, 거기다 인터넷까지 세상 가는 줄 모르던 취미생활(?)을 하루 접고 멍하니 창 밖으로 눈을 돌렸다. 정신 놓고 산 사이 벌써 가을이 와 있었다. 높고 푸른 전형적인 가을하늘에 구름도 한가롭게 떠 있었다. 앞산의 빽빽하던 녹음도 어느새 하늘을 가리고 있던 잎을 많이 털어 내고 있었다.
다음날 콜로라도에 사는 딸네 집에 다녀오신 수필가 김 선생님을 만났다. 내 맘을 아셨는지 다녀온 기념이라며 낙엽 두 장을 내미셨다. ‘가을편지’ 란다. 육십 넘은 연세에 그런 감수성을 지키고 계신 선생님이 부럽기도 하고 선생님의 마음씀에 감동했다. 말랐지만 아름다운 단풍잎을 보고 있으려니 내 친구 영수 생각이 났다. 때가 되면 미련 없이 제 몸을 떨구어 하늘을 여유롭게 해주는 낙엽처럼, 하늘을 다 차지하려 하지 않고 흘러가는 아름다운 구름처럼. 그렇게 하나님의 때에 간 것이 아닐까? 세상 때가 타기 전에 순수한 모습으로 하나님께 픽업된 친구.
낙엽이 지는 가을에 느끼는 왠지 모를 쓸쓸함을 사람들은 가을을 탄다고 말한다. 잎이 떨어져버린 앙상한 가지가 주는 외로움보다, 가지사이로 더 많은 하늘이 보이는 것을 감사해야겠다. 제 가진 것을 고집하지 않고 흘러가는 구름처럼, 덜 채우더라도 나의 가슴 어딘가에 빈터가 주는 여유를 갖고싶다. 가지면 가질수록 더 많은 것을 차지하려고 애썼던 나. 남 보다 더 좋은 것을 가지려 안간힘을 썼던 나. 가을편지로 받은 낙엽 두 장에 낙엽 따라 가버린 친구생각이 겹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는 가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