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해피엔딩 콤플렉스

2001-02-1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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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은선 (특집부 기자)

"미국인에게 한국 영화를 보여주고 싶은데 어떤 영화가 좋을까요?"

음성만으로도 나이가 지긋함을 짐작케 하는 독자에게 문의전화를 받았다. 친구가 한국 문화를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고 싶어해서 USC 영화제 상영작을 훑어보았지만 선정이 어렵다며 지난번 불교영화제에서 상영된 ‘아제아제 바라아제’를 관람했을 때 아리송한 표정을 짓던 친구에게 같은 우를 범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망설임 끝에 ‘서편제’를 권했지만 흡족하지 못하다. 몇 년전 미국 친구들에게 한국 문화의 정수라고 호들갑을 떨며 ‘서편제’를 보여줬던 기억 때문이다. 당초 기대와는 달리 무덤덤한 반응을 보이던 그들에게 한 개인과 지역 사람들의 집단적 슬픔을 ‘판소리’로 승화시킨 이 영화를 납득시키는 건 그야말로 힘들었다. 한국적 정서인 ‘한’을 설명할 영어단어조차 찾기 힘들었다. Hatred(미움)와는 의미가 다르니 Sorrow and Pain(슬픔과 고통)이라 해야 하나.


3월1일부터 3일간 UCLA에서 외국 배우들과 함께 한국적인 연극작품 ‘태’(Life Cord)를 공연하는 연출자 김철승씨가 떠오른다. 그는 "미국인들은 비극 속에서도 궁극적으로는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단서를 발견하려는 ‘해피엔딩 콤플렉스’가 있다. 철저한 비극인 ‘태’를 배우와 스태프, 관객들이 얼마만큼 공감할지 의문스럽지만 미국적 사고와의 충돌을 시도하면서 실질적인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의도를 밝힌 적이 있다.

미국인을 포함한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해피엔딩을 좋아한다. 주인공의 죽음과 같은 파멸로 인한 카타르시스보다는 온갖 짜증과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박장대소를 더욱 즐긴다.

이런 경향은 한국영화 ‘춘향’과 뮤지컬 ‘난타’에서도 다소 입증됐다. 판소리의 흥겨움을 통해 동화적 사랑 이야기를 영상에 담은 ‘춘향’의 순조로운 상영이나 주방에서 요리를 만들면서 발생한 에피소드를 사물놀이 리듬에 실어 코믹하게 구성한 비언어 뮤지컬 ‘난타’의 고액 개런티 수출.

한국적인 것만 추구하던 한국의 문화상품이 ‘한국적 시각’에 ‘보편성’을 조화시키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영화나 연극, 무용 등 한국작품이 더 이상 이국적 소재라는 단순한 동경 유발만으론 흥행에 연결되기 힘들지만 그래도 한국적 정서를 깊이 있게 이해시킬 수 있는, 해피엔딩 콤플렉스를 철저하게 극복시킬 수 있는 공연을 UCLA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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