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대공황의 그림자

2001-02-0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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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시각

▶ 로버트 새뮤얼슨 (워싱턴포스트 기고)

딸아이가 다니고 있는 학교 10학년 역사 선생이 최근 대공황의 원인과 20년대가 지금과 어떻게 닮았는지 비교하라는 숙제를 냈다며 제발 좀 도와달라고 내 친구인 학생의 엄마가 내게 간청해왔다. 요즘 세상 분위기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보여주는 한 예다.

지난 수십년간 대공황의 원인은 경제학자간의 논란거리였다. 대공황은 남북전쟁말고는 미국민이 겪은 최대의 재앙이다. 1933년 25%를 기록한 실업률은 1940년까지 두자리 숫자에 머물렀다. 제2차 대전이 발발해 국방비 지출이 대폭 늘어나면서야 실업문제가 해결됐다.

지금 다시 대공황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정부가 이를 막기 위해 신속한 조치를 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기 불황은 예상 밖으로 장기화될 수 있다. 일자리에 불안을 느끼면 사람들은 돈을 쓰지 않는다. 순익이 줄어들면 기업도 투자를 하지 않는다. 호황이 끝나는 것은 사람들이 지나친 낙관에 빠져 과소비와 과투자를 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지금이 20년대와 닮아 있다는 것은 불길한 조짐이다. 첫째는 테크놀로지에 대한 찬미다. 지금 하이텍이 각광을 받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20년대에도 자동차, 라디오, 냉장고, 진공 소제기등이 등장, 사람들의 삶을 대폭 변화시켰다.

둘째, 사람들이 주식투자 열풍에 휘말려 정신을 못 차리는 점이다. 1928년 주식을 갖고 있던 미국민수는 3%에 불과했지만 주식이 폭락한 후인 1930년 이 비율은 10%로 늘어났다. 1989년 32%이던 주식투자 인구는 1998년 52%로 불어났다.

세 번째는 소비자 부채의 급증이다. 다운페이를 하고 매달 갚아나가는 방식으로 물건을 사는 것이 보편화된 것이 20년대다. 1919년 5%에 불과하던 할부판매가 1929년에는 15%로 늘어났다. 95년에서 99년 사이 소비자 부채는 34% 증가한 6조 2,000억달러(그중 4조 8,000억달러는 모기지)로 증가했다.

네 번째, 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에 대한 믿음도 비슷하다. 지금 그린스팬 의장은 전폭적인 신뢰를 얻고 있다. 20년대에도 FRB가 불황을 막을 수 있으리라고 대부분 생각했다.

다행히 다른 점도 많다. 정부 규모가 그 때보다 훨씬 커져 경기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도 커졌다. 당시와는 달리 금본위제가 아니기 때문에 경기 부양책을 쓰는데 걸림돌도 없다. 지금으로 봐서 그 때 상황이 재연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아무도 미래를 장담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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