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내 딸은 요리사

2001-02-0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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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얼마전 딸과 크게 다퉜다. UCLA를 잘 다니던 딸 아이가 갑자기 요리사가 되겠다고 나온 것이다. “아니 뭐가 모자라서 기껏 요리나 하며 평생을 보내려 하느냐”고 아무리 꾸짖고 설득해봤지만 딸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세계 각국 음식을 맛보며 독창적인 요리를 개발해 먹는 기쁨을 만끽하며 살겠다는데 뭐가 잘못이냐는 항변에 할 말이 없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던가. 결국 딸은 남가주 요리의 명문으로 꼽히는 남가주 요리학교(CSCA)에 등록해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요즘 의사나 변호사, 엔지니어등 전통적인 직업인이 되기를 포기하고 요리사, 영화 감독, 애니메이터등 부모들이 선뜻 이해하기 힘든 직업을 택하는 2세들이 늘어나 갈등을 빚는 일이 잦아졌다. 이공계 4년제 대학을 졸업한 후 예술학교에 다시 등록을 하는가 하면 대학에는 10년째 적만 두고 전공과는 전혀 관계없는 분야를 전전해 부모 속을 썩이는 사례도 있다.

이같은 현상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공부가 가장 싫었어요’라는 책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아예 대학 진학을 포기하거나 다니다 그만두고 자기만의 세계를 개척하는 스시맨, 만화가, 스트릿 댄서등 젊은이 9명의 성장 과정과 꿈을 이루기까지의 방황을 담은 이 책은 한국 신세대의 사고방식이 부모세대와 얼마나 다른가를 보여준다.


한국이나 미국을 막론하고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직업중 하나가 요리사다. 여기에는 90년 발간된 이래 일본에서 1,000만부, 한국에서 100만부 이상 팔린 초특급 만화 베스트셀러 ‘미스터 초밥왕’도 한몫을 했다. 영세한 초밥집 아들이 초밥의 달인이 되는 과정을 그린 이 작품은 젊은 세대의 요리사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은 계기가 됐다.

미국에서 일류 요리사로 인정받으면 그야말로 ‘달콤한 인생’을 즐길 수 있다. 할리웃 연예인들이 즐겨 찾는 스파고등 일류 레스토랑의 셰프는 자신이 스타 같은 대접을 받는다. 연봉도 7자리 숫자고 사방에서 모셔 가기 경쟁을 벌인다. 그러나 일류 요리사가 되는 것이 간단한 일은 아니다. 남가주 요리학교의 경우 1,200시간의 실습과 240시간의 학과목, 360시간의 주방근무를 마쳐야 요리사 자격이 주어진다. 최고 셰프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선 졸업후에도 파리나 스위스에 있는 전문 요리학교에 진학해 더 소양을 쌓아야 한다.

분야에 관계없이 자기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고 사는 삶이 행복한 삶이다. 그러나 어디라도 정상에 오르려면 그만한 땀을 흘려야 한다. 손에 쥔 밥알 숫자를 정확하게 알아맞히지 못하면 초밥을 만든다고 말하지 말라는 게 정통 스시맨들이 제자들에게 들려주는 얘기다. 자녀가 남다른 방향으로 진로를 정하는 것을 무조건 막을 필요도 없지만 그것이 반드시 쉬운 길만은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줄 필요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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