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음대로 안되는 자녀혼사

2001-02-0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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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자의 세상읽기

▶ 권정희 편집위원

결혼시즌도 아닌 지난 2주간 나는 자녀 혼사를 걱정하는 부모들로부터 많은 전화를 받았다. 새해가 되면 대개 희망과 기대로 부푸는 법인데 노처녀 노총각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는 “또 해를 넘기고 말았구나”하는 안타까움이 더 깊은 것 같다.

‘해를 넘기고 나니…’더욱 답답해진 부모 마음을 건드린 것은 독자 이경미씨와 로저 강씨의 글이었다. 이경미씨는 ‘노처녀의 심정’이라는 글에서 “매년 한해가 지날 때마다 안절부절못하는 사람은 당사자인 내가 아니라 나의 어머니”라며 “결혼 못하고 있으니 죄인 아닌 죄인이 되었다”고 했다. “그렇다고 아무나 붙잡고 결혼할 수는 없는 노릇, 언젠가는 짝을 만나겠지 하는 느긋한 생각이 뭐 그리 잘못되었느냐”고 ‘노처녀’의 입장을 대변했다.

반면 로저 강씨는 혼기 맞은 딸을 둔 ‘아버지의 마음’을 전했다. “한눈팔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자격만 갖추면 백마탄 기사는 저절로 오게 되어 있다”고 두딸에게 가르쳤는데 막상 딸들이 결혼 적령기가 되자 나타나야 할 ‘기사’가 안 나타난다는 내용이었다.‘그 흔한 미팅이나 데이트도 금지시키고’ 공부만 하게한 아버지의 기대에 맞게 딸들이 명문대학, 좋은 직장을 손에 넣은 것까지는 좋은데, 한눈을 좀 팔아야할 지금도 딸들이 일과 공부에만 열중하니 ‘언제 사람을 만날까’그는 걱정을 했다.


본보 오피니언란에 두분의 글이 나가자 그 다음날부터 전화들이 걸려왔다. “자녀 교육방침이 나와 똑 같고 지금 처지도 비슷하다”“아버지의 마음이 너무 잘 이해된다”“결혼적령기 자녀들 신상명세를 인터넷에 올리든지, 부모들이 무슨 방안을 강구해야 할것이 아닌가”등 모두 같은 근심을 가진 부모들이었다. 한 주부는 결혼식 많은 봄철만 되면 분통이 터진다는 말도 했다.

“식장에 가보면 우리 아들이 신랑보다 더 잘 생기고 똑똑한 것같아요. 그런데 왜 저런 예쁜 신부를 못 얻나 생각하면 속에서 열이 나요”
공부마치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면 자식걱정 끝날줄 알았더니 혼사문제로 가슴에 묵직한게 얹힌 것같다는 부모들을 한인사회에서는 흔하게 본다.

40대후반의 백인여성과 부모들의 ‘자식걱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다. 자녀가 성년이 된후 미국부모들에게는 무엇이 가장 큰 걱정이냐고 물었더니‘집에 얹혀 사는 것’이라고 했다. 나이 들면 독립하는 것이 정상인데 부모 집에 같이 살면 남 보기도 떳떳치 않고 여간 속이 상한게 아니라고 했다. 자녀 혼사가 한인부모들에게는 큰 걱정이라고 하자 그는 의아해했다.

“나이가 37, 38살쯤 되면 모를까, 그전에 자녀가 결혼 안한다고 걱정하는 미국부모는 거의 못봤어요. 성인인데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하려니 믿고 기다리는 것이지요”

자녀의 결혼에 대해서 한인들이 유난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이유는 다양하다. “대를 이어야 된다는 전통적 사고방식이 뿌리 깊어서 그렇겠지요”“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결혼 안하면 철없는 아이예요. 결혼시켜 어른 만들 때까지는 부모가 챙겨야지요”“아이 직장에는 코리안이라고 없는데 타인종 애인이라도 덜컥 데려오면 어쩝니까? 그런 일 생기기 전에 부모가 다리를 놓을 수 밖에요”

문제는 부모들의 그런 노력을 당사자인 자녀들이 별로 고맙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맞선 말만 꺼내면 자존심 상한다고 펄쩍 뛰니 말인들 제대로 할수 있나요? 사정하듯 달래서 선을 보게 해봤지만 성과가 없어요”
자녀들이 이처럼 비협조적인 것은 기본적으로 결혼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좋은 사람이 있으면 결혼하겠지만 단순히 나이가 됐다고 결혼을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젊은 세대의 생각이다. 한국에서도 20대여성의 3/4은 결혼을 ‘선택’으로 여긴다는 통계가 있다.

걱정과 사랑이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는다. 자녀의 연령에 따라 걱정하는 방법도 달라져야 할 것이다. 자녀들이 나이차면 깍듯하게 성인으로 존중해주는 미국부모들의 태도에는 배울점이 있다. “과년한 아들·딸이 결혼할 생각을 안한다”고 애태우기 전에 부모는 당사자와 결혼문제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순서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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