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말도 안되는 일들

2001-02-0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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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 에세이

▶ 이정인 (국제부 부장대우)

지난주 LA타임스에는 눈에 띄는 기사가 실렸다. 캐나다에서 두아들을 키웠던 홀아버지가 지난해 성탄이브에 흔적 없이 사라진 맏아들을 찾아 LA 거리를 헤매는 내용이었다. ‘남의 일이 아니다’라는 열화같은 호응속에 그는 보도된지 이틀만에 아들을 만났다.

감격적인 해후를 기대했던 아버지에게 아들은 차갑게 "난 당신을 모릅니다"라고 내뱉었다.형을 찾아 캐나다와 LA를 한달 넘게 아버지와 함께 누비던 동생에게도 "귀찮게 굴지말라"고 했다.

큰 충격 끝 기억상실증 가능성을 검토한 경찰도 22세 성인인 그가 "난 캐나다로 안 갑니다. LA가 좋아서 자의로 내려왔거든요. 식구들도 안볼 겁니다"라고 똑똑하게 말하는 바람에 더 붙잡지 못했다.


눈물로 범벅된 아버지를 일별도 없이 그는 다시 샌타모니카 해변으로 나갔다. 홈리스센터에서 밥을 얻어먹고 아무데서나 노숙하는 생활로 다시 돌아간 것. 뒤에 남은 아버지는 "도대체 이유가 뭔가. 그것이라도 알아야겠다"며 울부짖었다.

단 한번도 말썽을 피운 적 없었다는 착한 아들의 ‘말도 안되는 언행’에 평생을 아들 키우는데 바쳤던 아버지는 아연실색하며 발길을 돌렸다. 그의 아들 찾기에 공헌한 LA타임스도 ‘실종아들 찾던 아버지에 가혹한 결말’이라고 제목을 달았다.

그 내용은 자식 가진 모든 부모 가슴을 철렁 내려 앉게 했을 것이다. 주변에서도 그런 사건은 크고 작은 차이가 있지만 비일비재하다. 살아 온 시간을 자세히 돌아다 보면 누구에게나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어디 하나 둘일까. 그래서 쉽게 튀어나오는 말중의 한 단어가 "말도 안돼"가 아닌가.

딸 자랑이 늘어졌던 한 엄마는 한순간에 독사같은 눈매의 불량소녀로 변해버린 딸을 결국은 타주로 보내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눈물바람이다. 뒤늦게 본 귀염둥이 아들을 어쩔 수 없이 면회조차 못하는 문제아 학교에 강제유학 시키고 ‘최선을 다해 부모노릇을 했는데 왜?"라며 자책감에 빠져있는 이웃도 있다.

그런가 하면 불탄 차량 속에서 사체로 발견된 젊은 한인남성이 피살된 게 아니라 사실은 자살했다는 수사당국 결론이 내려지자 가족은 물론 한인 커뮤니티에서도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했다.

미국 명문대학 졸업자인 번듯한 한 직장인의 소원은 ‘홈리스가 되는 것’이라 했다. 그를 훌륭하게 키워낸 것에 보람을 느끼고 기대고 사는 홀어머니와 여동생들이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지난주 호주오픈 테니스경기에서 힝기스나 데븐포트 같은 강호를 물리치고 여자테니스 최정상에 등극한 제니퍼 캐프리아티도 지난 7년간을 수렁의 바닥에서 허우적댔다.

15살 어린나이로 최고선수 자리에 올랐던 ‘요정같던 꿈나무’인 그가 갑자기 빗나가더니 급기야 절도죄와 마약소지죄로 체포됐고 난잡한 사생활로 가십거리를 난무시켰다. 가정도 풍비박산 됐다. 아무도 그의 행태를 이해할 수 없어 했다.


제대로 쾌속항진하다 궤도를 갑작스럽게 이탈, 비상식적 언행을 보이는 사람 측근에게서 가장 흔히 듣는 말은 "착한 아들, 성실한 남편이나 아내였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순전히 외부 문제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유전적 정신병이 아닌 이상 일을 일으키는 데는 반드시 이유가 있으며 다만 부모나 주변에서 그 이유나 문제를 무시, 또는 억누르거나 모른 체 했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서로가 참지 못해 처음부터 터뜨리며 치고 박으며 해결을 하는 사람이나 가정은 항상 시끄럽긴 하지만 주변이 ‘경천동지’할만한 사건을 만드는 일은 거의 없다. 또 사촌이나 친구, 친지를 이용한 우회작전으로 위험 예고 자녀나 배우자에게 파고 드는 것도 큰 사건 예방의 지름길이다.

가장 위험한 것은 "내 아이나 내 배우자는 너무 착해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집착이다. 성격상 또는 환경 탓에 겉으로 드러낼 수 없는 그들 내면이나 억제된 욕구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내 욕심대로 만들어 나가는 데만 충실한 것이다. 밖으로 표출되지 못하는 억눌림은 쌓였다가 어느 순간에는 폭발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겠는가?

말도 안 되는 말이나 행동은 그럴만한 역사나 배경에서 나온다. 그래서 꺼진 불도 다시 보고 잠든 자녀 얼굴이나 주변의 언행을 관심있게 읽고 또 읽으라는 금언이 수백년, 수천년을 내려오면서 진리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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