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천생연분과 ‘평생 웬수’

2001-02-0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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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태 (사진작가)

얼마전 한국의 연예인 서세원씨가 지방공연을 할 때 그 지방 부부에게 팬터마임을 시킨 적이 있다. 영감님에게 제목을 주면 손짓발짓 다해서 마나님이 알아 맞추면 서울왕복 티켓이 제공되는 게임이었는데 영감님이 받은 제목은 ‘천생연분’이었다. 영감님이 온갖 손짓발짓에 온몸을 동원해도 마나님은 헛돌고 그러다 초조해진 영감님은 입을 벌려서는 안 되는 규칙을 깨고는 발설을 하고 말았다.

“아 거 있잖아? 우리 같은 사이 말이야”

“아하 웬수?”


“아니 네글자로”

“오호라 평생웬수?”

이쯤 되면 영감님은 완전히 김이 새고 만다.

대한민국의 남자들은 이렇게 헛물켜고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란다.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배우자와 결혼하겠느냐는 질문에 남자들은 대부분 그러겠노라고 대답하지만 여자들의 거의가 아니란다. 한쪽에선 평생을 원수로 알고 살아가는데 상대방은 천생연분으로 착각하고 살아가 게 대한민국 국민들의 현주소라면 이건 ‘코미디’라기 보단 차라리 비극이다.

옛날에도 검은머리 파뿌리 되도록 해로한 건 순전히 억압당하면서도 순종한 아낙들의 덕인 것 같다.

반쪽지지도 얻지 못한 채 취임식에 임한 대통령치고는 너무도 당당했고 표는 더 많이 따고 패자로 상대방 대통령 취임을 축하하는 모습은 참으로 부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불청객이면서 40명씩 떼거리로 남의 잔치에 기웃거리는 한국의 국회의원들은 거지 떼들과 무엇이 다를까?

운 좋게(?) 근처에 얼쩡대다가 사진이라도 한장 같이 박히게 되면 그걸 들고 고국에 돌아가 얼마나 선전을 해댈까? 모르긴 몰라도 그들 중 하나가 ‘알 고어’처럼 억울하게 선거에 지는 일을 당했다면 4년 내내 고소장 들고 따라 다녀 임기 끝나도록 물고를 낼게 틀림없겠다.


입만 벙긋하면 국민과 민주주의를 부르짖지만 그들은 국민은 안중에 없고 민주주의란 의미조차도 모르는 것 같으니 불쌍한 건 세금 꼬박꼬박 내가며 큰소리 한번 못치는 백성들이 아닌가 싶다.

그래도 미국 눈에 나면 손해볼 것 같아서 효과도 없는 눈 도장 찍으러 몰려오는 모습들이라니 지도자들의 수준이 곧 국민들의 수준이라는데 우리 조국의 수준은 정말로 세월이 흘러도 마냥 바닥에서 맴돌아야만 하는지.

한국 젊은이들의 이혼율을 보는 ‘올드타이머’ 미주 한인들의 감정은 한국의 기성세대와는 많이 틀리다.

그곳에서야 젊은이들의 의식구조 변화를 주욱 보아와서 대단한 쇼크는 없겠지만 이혼이란 당시 첨단을 달리는 별난 몇몇 사람의 일로만 알고 이민온 ‘올드타이머’들에겐 어느 외국의 얘기로 들리는 착각도 무리가 아니다.
그런데 요즘은 이곳도 너무나 미국화 되어 간다. 젊은 부부들의 이혼은 고사하고 중년 이후에도 일 끝나고 손 털듯 쉽게들 털고 돌아선다. 앞으로 까마득하게 남은 세월을 더 좋은 사람 만나 신나게 즐기겠다는 듯.

“이보시오 두 분이 오순도순 감싸주며 살아도 얼마 안 남은 여생이라오. 천생연분은 하늘이 내려주는 게 아니라오.”

“둘이서 알뜰살뜰 아끼며 내 몸 위하듯 서로 위할 때 천생연분은 만들어지는 거라오.”

“염라대왕이 저 건너에서 손짓하는데 아웅다웅 싸울 시간이 어디 있다고들 그러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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