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부모보다 좋은 한국말 교사는 없다

2001-02-01 (목)
크게 작게

▶ 윤주환<뉴저지>

한국의 읽고 쓰기 중심의 영어교육으로 말미암아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 영어공부를 죽어라 열심히 해도 미국사람과 간단한 일상회화 조차할 수 없는 벙어리 영어란 것은 모두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 경험을 한 대부분의 부모들이 미국 와서 자녀들에게 그와 똑같이 벙어리 한국어를 배우게 하는 것은 참으로 신기하다.

재미동포 2세 자녀를 둔 부모들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는 자녀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이다. 그래서 주말이면 부지런히 한글학교엘 보낸다. 한국에서 영어를 배우는 학생들이 실용 영어회화 실력이 가장 필요하듯이 미국에서 한글을 배우는 자녀들도 실용 한국어회화 실력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그 한국어 회화를 배울 수 있는 제일 좋고 또 필요한 가정에서 자녀들이 자기 부모들과 영어로 대화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컬하다.

한국에서 벙어리 영어를 배워서 영어회화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더 잘 아는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벙어리 한글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것은 부모들이 먼저 자녀들과의 영어대화를 통하여 영어를 배우려는 동기가 많다. 걸핏하면 자녀교육을 위하여 미국 왔다고 말하는 부모들이 자기 편의를 위하여 자녀들에게 벙어리 한국어를 배우게 하고 자기들은 자녀들을 통하여 산 영어를 배우는 기이한 현상이다. 알맹이는 부모가 챙기고 자녀들에게는 껍데기만 주는 꼴이다.


집에서 항상 한글로만 대화하는 자녀들은 한글학교를 전혀 다니지 않았어도 한글학교를 열심히 다니지만 집에서 영어만 쓰는 자녀들보다 훨씬 한국말을 잘해서 부모와 대화하는데 거의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그와 같이 집에서 한국어만 쓰는 자녀들은 산 한국어를 배우는 것이고 집에서는 영어만 쓰고 주말 한글학교에서만 한국어를 배우는 자녀들은 죽은 한국어를 배우는 것이다. 그것은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뚜렷한 목표가 없이 남들이 주말 한글학교를 보내니까 나도 보낸다는 그릇된 태도에 기인한다.

간단한 일상 회화조차 잘 할 수 없는 한국어, 그것도 주말 한글학교에서만 배운 읽고 쓰기 중심의 초보 한국어는 1~2년만 안 쓰면 거의 다 잊어버린다. 그와 같이 한글을 배우게 하는 것보다는 집에서 부모와 자녀들이 항상 한국어로 대화를 하여 산 한국어를 배우게 해야 한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를 주말 한글학교만 보내면 그들의 한글교육이 다 끝나는 줄 아는데 그것은 다만 조그만 시작에 불과한 것이다. 가정에서는 항상 한국어를 써야 한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