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001년 겨울, 서울에서

2001-02-0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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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주<수필가>

나는 서울에 자주 드나드는 편이지만 오래 머문 적은 없다. 길어야 일주일 아니면 사흘 정도여서 서울의 참모습을 경험하는 일은 드물었다.

이번엔 한달여를 머물렀다. 병원에도 가고, 지방에도 가보고, 설날 연휴까지 지냈으니 참으로 오랜만에 푸근하게 서울을 맛본 것이다. 그런데 스스로가 생각해도 어이없는 일은, 내 조국이면서도 나는 마치 이방인처럼 비판의 눈으로 내 조국을 보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몸이 불편해서 병원에 갔을 때였다. 전화로 예약을 할까 물었더니 그냥 오라는 바람에 아침 일찍 병원에 가서 접수를 했다. 나는 거의 1시간 반을 망연히 앉아서 기다린 후에야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진료실로 들어갔더니 내 앞 순서인 남자환자가 아직 남아 있었다. 진료실은 딱 닭장 만한 크기. 의사의 책상과 환자용 의자 한 개, 그 바로 옆에 흰색 커튼이 쳐 있는 진찰대가 전부였다.

간호사는 커튼 뒤 진찰대에 있는 내 앞의 남자에게 “바지를 무릎까지 내리세요. 무릎을 가슴에 대고 구부리세요” 말했다. 얇은 커튼 한 장을 사이에 두고 나는 그 남자가 옷 벗는 소리, 진찰대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세밀하게 들어야 했다. 내 앞의 남자가 나가고 이번엔 내가 진찰대로 올라갔을 때에는 다음 순서인 남자 환자가 그 방에 들어와 앉아 있었다. 밀려드는 당혹감….

더 기막힌 것은 진찰대였다. 진찰대 위에 절반으로 접혀져 깔려 있는 흰 타월 한 장이 문제였다. 내가 들어갔을 때 타월은 이미 때가 조금 끼어 있었고, 어느 누군가의 몸에서 나왔을 분비물 얼룩이 두개나 있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던 내가 “이 타월 위에서 모든 사람이 옷을 벗고 눕습니까?” 했더니, 간호사가 “바꿔 드릴게요”하더니 새 타월을 꺼내서 깔아주었다. 아마도 불평하지 않는 환자에게는 그 타월을 다시 쓰는 것처럼 보였다. 그 후 내시경 검사를 받으러 가서도 상황은 똑같았다.

그 병원은 그 분야에서 최고의 명성을 가진, 규모도 대단히 크고 환자도 많은 ‘잘 나가는’ 병원이었다. 그런 병원에서 일회용 종이 타월을 쓰지 않는다는 사실은 나같은 ‘이방인’에겐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었다.

의사의 태도 또한 너무나 불손했다. 무언가 질문을 하면 혀를 차고, 머리를 흔들면서 피곤해 죽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강압적인 언사를 썼다. 너는 듣고만 있어라, 시키는 대로만 하라는 식의 태도. 내가 굳이 서울에서 병원에 온 것은 내가 궁금한 것을 우리말로 마음껏 물을 수 있는 병원이 그리워서였는데, 우리나라에서 의사가 그렇게 높은 지위인 줄 미처 몰랐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방인’의 눈에 비친 서울은, 마치 빛과 그늘의 선명한 콘트라스트처럼 그런 모순이 너무나 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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