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숫자 미신

2001-01-2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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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을 맞아 한국에서는 또 한차례 귀성전쟁이 벌어졌지만 구정을 요란하게 쇠기는 역시 중국인들이다. 음력 초하루부터 보름까지가 설 잔치인데 이때의 사는 모양새가 1년을 좌우한다고 해서 금기도 많고 미신도 많다.

중국인들의 설 준비는 구정 한두주 전부터 시작된다. 잔치가 오래 계속되니 준비할 것이 많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이런저런 미신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섣달 그믐까지 집안 청소를 말끔히 해서 새해 보름동안은 일체 청소를 안하는 것. 먼지 털고 쓸고 하면 복이 같이 쓸려 나간다고 믿기 때문이다.

음식도 미리 장만해 보름동안은 장도 보러가지 않는다. 1-2주전부터 빵, 완자, 돼지고기등 음식을 잔뜩 준비해서 보름동안 먹는다. 집안에 음식이 그득하게 넘쳐야 그 풍요로움이 1년내내 계속된다는 미신 때문이다.


중국인들의 미신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숫자. 한국사람들도 ‘죽을’사(死)라하여 4를 싫어하고 7을 행운의 숫자라고 좋아하기는 하지만 중국사람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는 8. ‘많이 불어난다’, ‘떼돈 번다’는 뜻의 ‘파’(發)와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전화번호나 자동차번호판에 유난히 8이 많이 들어있으면 십중팔구 주인이 중국계이다. 중국인들은 일부러 돈을 더주고 그런 번호들을 산다.

다음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숫자는 9. ‘오랜간다’ ‘영원하다’는 뜻의 ‘지우’(久)와 발음이 같아서이다. 중국집 어항을 유심히 살펴보면 대개 물고기가 9마리 들어있는데 그래야 죽지않고 오래 산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랑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결혼식날은 9자 들어간 날이 가장 인기. 지난 1999년 9월9일에는 특히 결혼식이 많았다고 한다.
아울러 6도 좋은 숫자. 항상 잘나간다는 듯의 ‘이루순펑’(一路順風)의 ‘루’와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4는 중국사람들에게도 죽을 ‘쓰’(死). 그래서 유난스런 사람은 자동차 번호판에 4가 들어있으면 절대로 안탄다.

중국인들의 ‘숫자미신’은 최근 특히 심해졌는데 휴대전화 붐이 원인이다. 특히 중국에서는 전화번호를 놓고‘숫자 사치’가 극성이다. 888-9988등 8이나 9가 많이 붙은 번호는 경매에 붙쳐져 수천달러에 팔린다고 한다. 8이 겹친 숫자외에도 518, 168, 289는 ‘곧 부자가 된다’, ‘번영의 길이다’, ‘쉽게 오래오래 번영한다’는 말과 발음이 비슷해 비싼 번호들. 반면 웃돈을 얹어줘도 아무도 안갖는 번호는 14(‘곧 죽는다’)가 들어간 번호이다.

다행히도 한국사람들에게는 이런 지나친 숫자미신이 없다. 휴대전화 붐에도 불구, 번호 경매했다는 이야기는 없다. 1234, 1004, 8282등 외우기 쉬운 번호가 인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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