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강제단전사태의 숨은 이유

2001-01-2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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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개봉된 영화중 ‘에린 브로코비치’라는 작품이 있다. 실화에 바탕을 둔 영화로 작품상,여우주연상,감독상등 골든글로브 4개부문 후보에 올랐고 아카데미상도 몇 개쯤 받을 것으로 전문가들이 점치고 있다. ‘프리티 우먼’ 줄리아 로버츠가 역을 맡은 이영화의 주인공 에린 브로코비치는 두아들을 데리고 B급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며 힘들게 살아가는 젊은 이혼녀다. 브로코비치는 모하비사막의 작은 마을 힝클리에서 암환자가 많이 발생하고 있는 것을 추적하다가 마을사람들이 마시는 물에 발전소에서 방출한 유해물질이 스며든 사실을 발견한다. 발전소의 소유주인 유틸리티회사는 사실을 은폐한채 시치미를 떼온 것이다. 브로코비치는 거대 유틸리티회사와 싸워서는 승산이 없다는 주위의 만류와 갖은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맞선 끝에 미사법사상 최고액인 3억3300만달러의 배상금을 받아낸다.

이 유틸리티회사가 바로 이번에 캘리포니아주 전력사태를 야기한 장본인중 하나인 퍼시픽 개스&일렉트릭사(PG&E)다. PG&E와 남가주 에디슨사는 캘리포니아주 전기공급을 양분하는 굴지의 회사다. 발전에서 판매에 이르기까지 모든 전력공급 과정을 독점해왔던 이들은 ‘에린 브로코비치’ 사건이후 환경문제가 부각되면서 생산에서는 손을 떼기를 원했다. 환경보호단체들의 아우성도 높아지고 소송에 휘말리는 일이 귀찮아진 것이다. 그래서 막대한 돈을 들여 주정부와 주의회에 로비를 했다. 그 결과로 나온 것이 바로 96년 제정돼 98년 발효된 전력공급 자율화법안이다. 전력공급의 자율화는 사실상 귀찮은 전력생산은 군소 독립업체들에게 떠넘기고 자기네는 공급만을 맡아 편하게 돈벌겠다는 이들 유틸리티사들의 속셈에 의해 탄생된 작품이다.

처음에는 의도대로 잘 나갔다. 생산시설을 군소업체들에게 팔아넘기고 싼값에 전기를 사들여 판매하니 이익도 많이 났다. 주주들에게 이익배당도 후하게 해주고 경영진들은 수천만달러의 보너스를 챙겼다. 그러나 호사다마랄까, 경쟁이 심해진 독립업체중 도산하는 곳이 생겼고 호경기가 지속되자 생산은 늘지 않는 상태에서 수요는 크게 늘었다. 게다가 캘리포니아주 발전시설의 50% 이상이 천연개스로 가동되는 마당에 천연개스 가격이 2배로 올랐다. 도매가격이 크게 뛰었다. 그동안 아무런 대비없이 흥청거렸던 유틸리티회사들에게 이를 감당할 능력이 있을리 없었다. ‘도매가격만 자율화해주고 소매가격은 통제하고 있는 탓’이라며 새크라멘토에 대고 우는 소리를 해봤지만 주정부 입장에서도 전기요금인상을 무턱대고 허가해줄 수는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두회사의 재정이 어렵다는 소문이 나자 타지역 도매회사들이 판매를 꺼리게 되는 바람에 전력공급에 차질을 빚게됐다. 결국 소비자들만 강제단전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사태를 겪게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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