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노년을 사는 재미

2001-01-1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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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진식<사이프러스>

2년전 18년간이나 해오던 사업을 정리하고나서 나는 세속적인 욕망과 시간의 구속에서 해방되어 마음의 평화를 즐기고 있다. 특히 시간에 괘념치않고 흘러가는 세월에 나이마저 맡겨두니 백발이 되어가도 아무런 조바심도 느끼지 못하고 생일조차도 잊어버리고 살고싶어진다.

그러나 아내는 나와 달라 늙어가는 것에 많은 불평을 늘어놓고 있다. 열심히 살고있을 때는 얼굴에도, 의복에도 그리고 모양새에도 크게 신경을 쓰지않다가 은퇴하고난 뒤는 거울앞에선 자신의 모습을 보고 가끔 탄식을 토한다. 이민와서 고생도 할만큼 하고 이제 먹고 살만하니 어느 세월에 얼굴은 주름지고 머리끝은 희어가고 게다가 당뇨와 고혈압이란 종신병에 걸려 먹고실은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한다고 짜증 섞인 말투로 나를 원망도 한다. 자식들이 용돈을 달라고 보챌때가 좋았고 사는 보람도 느꼈는데 짝을 지어 새 둥지를 틀어나가니 상실감에 빠져 허망해한다.

우리부부가 남남으로 만나 하나가 되어 긴세월동안 자식을 낳아 기르고 알뜰살뜰 살아오다가 이제 늙어 친구가 되어 서로의 허전한 마음을 달래고 위로해도 아내는 아마 삶의 바닥에서 고독을 느끼고 그 고독의 심연속에서 허무를 맛보는것 같다.


그래서 나는 모든 인간이 결코 좋지도 않은 이 인간세상에 타의에 의해 태어나 숙명적으로 살아가는데, 새잎 돋아 푸른잎되고, 그 푸른잎 단풍되어 소슬바람에 낙엽으로 떨어져 흙에 묻히듯, 자연의 섭리를 순리를 받아들어야 한다고 부처님 같은 말로 아내를 달래보기도 한다.

그런데 지난해 봄 며느리가 첫 손자를 우리 내외의 품안에 안겨주고 나서 아내는 옛날의 삶의 활력을 되찾아 갔다. 아내는 두 아들을 어른들 밑에서 기르면서 어미의 진한 애정을 절제했는데 첫 손자에게는 주고싶은 사랑에 깊히 빠져 들어가고 있다.

며느리가 6개월간의 산후휴가를 끝내고 다시 직장으로 출근하는 날 아침 아기는 무엇을 느낀듯 어미의 옷자락을 붙잡고 흐느끼듯 울면서 눈물을 흘린다. 어미도 가슴이 아픈듯 눈시울을 붉히며 돌아서고 우리 또한 가슴에 찡한 아픔이 왔다. 조부모인 우리가 때맞추어 은퇴하고 있어 저런 아기를 베이비시터에게 맡기지않아도되니 얼마나 다행인가.

우리는 손자에게 우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채우고 잠투정을 하면 등에 업고 “달아달아 밝은 달아”를 읊조리며 잠을 재운다. 또 아기를 즐겁게하기 위해 두 늙은이가 “나비야”와 “산토끼야”를 부르며 주책없이 호들갑을 떨면서 삶의 공백을 메운다. 때로는 햇볕 쬐는 뒤뜰에 나가 푸른 우주를 가르치고 나는 새를 보며 자유의 의미도 설명하고 화단의 푸른잎과 꽃을 만져보며 생명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

“여보, 내가 한 십년은 더 살아야 되지 않겠나?”

“언제 죽어도 괜찮다면서 왜 갑자기 욕심이 생겼어요?”

나는 적어도 십년은 더 살아서 아직 결혼하지 않은 둘째의 아이들마저 길러 주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오늘도 할머니 등에 업혀 평화로이 잠자는 손자의 얼굴에서 그 옛날 제 아비의 모습을 보고 아름다운 그림을 마음속에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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