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퍼스트 레이디 투 퍼스트 레이디

2001-01-1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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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시각

▶ (마조리 윌리엄스, 워싱턴포스트 기고)

친애하는 로라에게,

이렇게 불쑥 펜을 드는 무례를 용서하세요. 그러나 이번 토요일이면 우리 두사람은 펜실배니어 애비뉴 1600번지 안주인 클럽의 같은 회원이 되지 않습니까.

당신은 당신과 내가 아무런 공통점이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당신은 아이젠하워 부인 메이미를 쏙 빼닮았다고 하더군요. 나는 백악관에서 8년을 보내는 동안 단 한번도 그같은 칭찬을 들어본 적이 없답니다. 그러나 어쨌든 선배입장에서 새로 백악관 안주인이 되는 당신에게 몇마디 조언을 남기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나는 정말 당신이 그동안 해온 현모양처형 이미지로 잘 해나가기를 빕니다. 자신의 속내를 감춘채 평범한 여성의 모습으로 비쳐지는 것은 4년간 백악관에서 살아가는 동안 조금이라도 프라이버시를 누릴 수 있는 좋은 전략입니다. 나는 그같은 진리를 깨닫는데 8년이나 걸렸지만 당신은 퍼스트 레이디의 역할을 바꾸는 일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진리를 처음부터 알고있는 것 같군요. 필요할 때 우스꽝스런 의상을 걸치고 나가고 그 이면에서 자신의 삶을 즐기십시오.

물론 당신은 그동안 주지사 부인노릇을 해봤으니 이 지옥같은 생활이 어떤 것인지 이미 잘 알고있을 것입니다. 2월달부터 크리스마스카드를 골라야하고 연설때마다 아양의 극치를 떨어야하며 그 끔찍한 드레스들을 입어여 한다는 것등 말입니다. 그 싸움에서 결코 이길 수는 없습니다. 싸움자체를 피해야 합니다. 언제 누가 당신의 모습,헤어스타일,다리,의상,일상생활에 관해 무자비하게 비판을 가해올지 모릅니다. 당신의 디자이너에게 재갈을 물려야 합니다. 아주 쫓아내도 좋겠지요. 패어크로스라고 했던가요. 당신이 나를 만나러 왔을 때 입었던 진홍색 정장에 대해 기자들에게 떠벌이지 않았습니까. 당신의 몸매, 실루엣을 놓고 왈가왈부했던 기억이 납니다. 신문에다 대고 당신을 뚱보 시골뜨기로 흉본 사람을 가까이 둘 이유는 없답니다. 말하는데 보다는 옷만드는데 재주를 써야겠지요. 게다가 옷쯤이야 얼마든지 공짜로 입을 수 있는 일이 아닙니까. 퍼스트 레이디 좋다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나는 당신이 ‘정책 결정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있는 것으로 압니다. 현명한 처신입니다. 그러나 그말이 당신의 진심은 아니기를 바랍니다. 이제부터는 당신 남편의 이익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이 지구상에 당신 한사람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뒤를 지켜주는 것이 당신 임무입니다. 그래요, 당신 남편 주위에는 충성을 맹세한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은 압니다. 그러나 칼 로브와 딕 체니가 2인자 자리를 놓고 다툴 때 그들은 대통령 집무실에서 비수를 들고 싸울 것입니다. 그들이 당신 남편 조지가 어떻게 되든 상관할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지금부터 당신 남편은 온 세상이 갖기를 원하는 하나의 물건에 지나지 않습니다.

당신의 역할을 베갯머리 송사로 한정시킨다고 해도 좋습니다. 나도 처음에는 몇차례 시도해보기는 했지만 그런식으로는 일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퍼스트 레이디의 역할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언론은 언제나 낸시 레이건이 하는 방식을 비난하고 바바라 부시의 방식을 반박하며 로살린 카터의 방식을 야유하게 마련입니다. 기자들이란 퍼스트 레이디가 ‘정말로 낙태찬성론자인가’ ‘대통령의 프레도니아 개입에 무슨 역할을 했는가’ 따위의 문제를 가지고 고심하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부류입니다. 장고 끝에 나온 그들의 기사는 항상 틀린 것 입니다. 퍼스트 레이디의 역할은 단 한가지입니다. 주위에 공포심을 심어주는 것 입니다. 빠를수록, 잦을수록 좋습니다. 자기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남정네가 너무 가신들에게 둘러싸인 나머지 자기 자신의 이익을 명확히 보지 못할 경우에 써야 합니다. 야심가를 제어하고 경솔한자를 추려내고 출세만 지향하는자를 발견해내는데 사용합니다. 당신 남편 주변의 참모니 가신이니 하는 자들의 머릿속에 당신의 지시를 거역했다가는 큰일난다는 생각이 들도록 만드는 것이 빠르면 빠를수록 일을 하기가 수월합니다. 몇차례 시범적으로 본때를 보여주는 것도 괜찮습니다. 주책없이 떠벌이는 작자들을 잡아 단칼에 날려버리는 것입니다. 볼테르는 휘하의 장수들을 잘 통솔하기 위해서는 이따금 장수 하나씩을 희생시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당신은 공포의 상징이 될 것입니다.

어떤 대통령부부는 의식적으로 그같은 역할분담을 했습니다. 당신의 시부모 내외도 그같은 술수에 능통했었지요. 퍼스트 레이디는 남편을 제치고 주도권을 쥔 퍼스트 레이디도 있습니다. 낸시 레이건이 그렇고 아마도 당신도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당신 남편이 내가 생각하고 있는 바로 그런 인물이라면 당신은 스스로 개척해야할 일이 많을 것입니다. 당신은 머리도 있고 의지도 강한 것 같으니까 잘해나갈 것으로 믿습니다.

당신이 부럽지는 않습니다. 8년을 백악관에서 지내고보니 트렌트 랏과 씨름하는 일쯤은 여름휴가를 보내는 기분이기 때문입니다. 행운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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