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대통령의 낙상

2001-01-1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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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중 두발로 걷는 것은 인간뿐이다.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지금도 인간처럼 걷는 로봇 개발작업은 아직 미완성이다. 얼핏 보기에는 간단해 보여도 걷는다는 것은 상당히 복잡한 행위다.

갓난아이는 돌이 되면 일어서 걷기 시작한다. 수십번, 수백번 넘어져도 오뚜기처럼 일어나 끝내는 혼자 걷는데 성공한다. 앞으로 거꾸러지고 뒤로 넘어지고 옆으로 쓰러져도 신기하게 다치는 법이 없다. 설사 부상을 입더라도 살과 뼈가 탄력이 있어 금방 낫는다. 어른에 비해 체중에 훨씬 가볍고 떨어지는 거리가 작기 때문이지만 옛부터 ‘세살까지는 삼신할머니가 지켜준다’는 말도 전해져 온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얘기가 달라진다. 눈도 침침해지고 균형감각도 떨어지는 데다 반응 속도가 느려 넘어지기가 일쑤다. 뼈가 굳어져 한번 부러지면 잘 낫지도 않는다. 매년 미국에서는 65세 넘은 노인 세 명중 한 명이 낙상으로 고생한다. 넘어져 엉덩이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는 노인만도 25만 명에 달하며 이중 20%가 1년 안에 죽는다니 충격적이다. 완전히 회복되는 경우는 25%에 불과하고 50%는 평생 지팡이를 짚고 다녀야 한다.


원기 쇠약등 점진적으로 찾아오는 노쇠 현상과는 달리 낙상은 한번 잘못 당하면 인생이 완전히 바뀌기 때문에 정신적 충격이 더 크다. 요양원에 보내질까 두려워 다치고도 이를 숨기는 노인도 많다. 7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0%가 낙상을 당해 요양원으로 보내질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답했다.

지난 주말 다음달로 90회 생일을 맞는 레이건 전대통령이 낙상을 당해 엉덩이뼈 접착 수술을 받았다. 공교롭게 지난달에는 부시 대통령이 엉덩이뼈 대체수술을 받았으며 3년 전에는 부시의 부인 바바라 여사가 역시 같은 수술을 받았다. 지난 해 80회 생일을 맞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여배우 엘리자벳 테일러도 수년전 낙상으로 엉덩이뼈 수술을 해야 했고 엘리자벳 영국 여왕의 모후도 수년 간격으로 양쪽 엉덩이뼈를 모두 부러뜨려 두차례나 수술을 받았다.

최근 한인 노인들 사이에도 낙상으로 고생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주로 넘어지는 곳은 계단과 샤워장이지만 산책을 나왔다가 날치기에게 물건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버티다가 넘어진 사례도 적지 않다는 것이 한 LA시 검찰 관계자의 얘기다. 푼돈이야 없어도 살 수 있지만 늙그막에 한번 부러진 뼈는 좀처럼 낫지 않는다. 레이건 낙상이 한인 노인들이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새삼 조심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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