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경기 예측과 나비 효과

2001-01-1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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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코노미스트

▶ 민경훈 (편집위원)

옛날 사람들은 천둥 번개가 치면 하늘이 노해서 그렇다고 믿었다. 가뭄이 들어도, 홍수가 나도 신이 화난 탓으로 돌렸다. 한 때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용의 눈물’에도 계속된 가뭄으로 백성들이 굶어 죽자 태종이 기우제를 지내다가 지쳐 죽는 장면이 나온다.

기후를 비롯한 온갖 자연의 변화가 신의 기분에 따라 좌우된다고 생각한 것은 한국 사람뿐만이 아니라 세계 공통의 현상이다. 자연 현상을 신화나 전설이 아니라 이성과 자연법칙에 의해 이해하려고 처음 시도한 사람은 기원전 6세기경 아이오니아의 자연철학자들이다.

그중 대표적 인물인 탈레스는 최초로 일식을 예측한 것으로 유명하다. 평소 가난하게 살자 주위 사람들이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은 잘 알면서 자기 앞가림도 못한다’고 빈정댔다. 기상관측을 통해 그 해 포도 풍년이 들 것을 미리 안 탈레스는 어느 날 빚을 얻어 주위의 포도주 제조기구를 모두 사 버렸다. 과연 사방에 포도가 주렁주렁 달렸으나 기구가 없어 포도주를 담그려 해도 담글 수가 없었다. 모두 그에게 달려가 기계 팔 것을 애원하자 비싼 값을 매겨 떼돈을 번 후 이를 가난한 사람들에 나눠줬다는 일화가 남아 있다.


근대 이후 과학이 발달하면서 한 때는 신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모든 자연 현상을 인간이 이해할 수 있으며 따라서 미래를 예측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생각이 퍼지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수학자 라플라스는 “현재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입자의 위치와 속도만 알면 우주가 생긴 이래 지금까지의 역사와 앞으로 세상 끝 날까지 일어날 모든 일을 알 수 있다”고 호언하기까지 했다.

뉴턴 과학 혁명의 성공으로 의기양양해진 학자들은 과학적 탐구의 대상을 자연에서 인간과 사회로 확대하기 시작했다. 물질이 자연법칙에 의해 움직인다면 역시 물질로 이뤄진 인간 또한 인과율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란 것이 이들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런 과학자들의 자신감은 20세기 들어오면서 깨지기 시작했다. 지난 달 베를린에서는 막스 플랑크가 발표한 양자역학 논문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대규모 학술대회가 전 세계 700명의 물리학자가 모인 가운데 열렸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와 함께 20세기 물리학의 최대 업적으로 꼽히는 양자역학이 없었더라면 트랜지스터나 실리콘 칩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며 따라서 정보 통신혁명도 불가능했다.

양자역학의 중요한 포인트의 하나는 소립자의 세계에서는 인과율이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원자와 원자가 화학반응을 일으킬 때 어떤 비율로 반응할 지는 알 수 있지만 개개의 원자중 어떤 것이 반응할 지는 결코 알 수 없다. 또 소립자의 위치와 속도, 두 가지중 하나는 알 수 있지만 두 가지를 동시에 알 수는 없다. 그 이유는 사물을 관찰하기 위해서는 관찰자와 관찰 대상을 맺어주는 매체가 필요한데 그 매체의 하나인 빛을 쏘는 순간 빛 입자가 관찰 대상에 영향을 미쳐 정확한 정보를 얻는 것이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양자역학이 제기하고 있는 문제점은 이론적인 것으로 앞으로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극복할 수 없다.

극미의 세계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도 많은 자연현상이 예측 불가능하다는 게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혼돈(chaos) 이론의 결론이다. 아무리 강력한 컴퓨터로도 나뭇잎이 정확히 어떤 지점에 착륙할 지는 예측해내지 못한다. 나뭇잎 잎새의 모양, 중력, 바람의 방향등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수없이 많은데다 이 요소가 시시각각으로 변하며 그 하나하나 요소를 좌우하는 요소가 또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얼핏 보기에는 사소한 움직임이 상승 작용을 일으켜 나중에는 엄청난 결과를 불러일으키는 현상을 ‘나비 효과’(butterfly effect)라고 부른다. 브라질에서 나비 한 마리가 날개 짓을 하면 북대서양에 폭풍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혼돈이론과 나비효과 연구가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분야의 하나가 경제다. A라는 사람이 올해는 새차를 사지 않기로 결심하고 그 영향으로 차를 살까 말까 망설이던 직장동료 B와 친척 C도 새 차를 사지 않기로 하면 자동차 회사는 직원을 줄일 수밖에 없다. 실업자가 늘었다는 통계를 본 사람들이 구매를 줄여 경기가 계속 나빠지면 A가 다니던 회사도 A를 해고할 수밖에 없다. 결국 자동차를 사지 않기로 했다가 A는 일자리를 잃게 된 셈이다.

해마다 연초가 되면 각종 경기 전망이 쏟아져 나온다. 전혀 무시할 수도 없지만 지나치게 신뢰하는 것도 어리석다. 보고서 작성자 본인도 경기에 영향을 미칠 모든 요소를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할뿐 아니라 이 요소들이 수시로 변하기 때문이다. 올해 경기를 100% 정확히 내다볼 수 있는 사람은 지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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