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다리는 삶과 시간의 의미

2001-01-1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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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칼럼

▶ 이 철(주필)

어떤 사람이 부자인가. 시간있고 남에게 베풀줄 아는 사람이다. 돈만 많은 사람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돈의 노예다. 부자라고 말하기에는 여유가 없어 부자로 불린다 해도 C급부자에 해당된다.

어떤 사람이 가난한 사람인가.

자나깨나 앉으나 서나 돈, 돈, 돈하는 사람이다. 남이 보기에는 그만하면 먹고 살만도 한데 자기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항상 ‘조금만 더’ ‘조금만 더’하며 부족해 한다. 가진것에 만족할줄 모르는 사람이다. 이런 타입은 라스베가스 카지노에서 돈을 땄는데도 계속 앉아있는 사람이나 비슷하다. 어느 단계에서 만족하고 물러날줄 알아야 하는데 자기가 자기욕심을 이기지 못한다. 컨트롤이 안되는 형이다.


어떤 사람이 행복한 사람인가.
여기에는 여러가지 정의가 있겠으나 이민생활에서 가장 실감나는 것은 ‘기다리는 삶’을 가진 사람들인것 같다. 수요일에는 친한 친구들과의 모임이 있고, 토요일에는 등산계획이 있고, 일요일에는 모처럼 기숙사에 있는 자녀들이 집에 들른다는 식으로 스케줄이 잡혀있는 사람들 얼굴을 보면 표정이 밝다.

수요일에는 수요예배 나가서 즐겁고, 일요일에는 일요예배 드릴수 있어서 기쁘다면 그 또한 기다림의 삶이다. “예수님과 연애하는 기분으로 교회에 나간다”고 말하는 신자들을 보았는데 확실히 이런 분들의 얼굴은 보통 사람들의 얼굴보다 환하고 따뜻해 보인다.

유럽여행, 아니면 중국이나 일본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들도 즐거운 표정들이다. 여행이란 여행 떠나는 그 자체보다 여행가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이 더 즐겁기 마련이다.

행복하게 지내려면 희망에 찬 삶을 살아야 하는데 이 희망에 찬 삶이 바로 ‘기다리는 삶’이다. 기다리는 삶과 아무 기다림도 가지지 않은 삶의 맛 차이는 활어와 냉동생선 맛 차이만 하다.

기다리는 삶의 필수조건은 자신이 목표를 세우는 것이다. 희망과 목표가 거의 동의어처럼 쓰이는 이유는 목표 없으면 희망도 없기 때문이다.

목표없는 삶은 피곤하기 짝이 없다. 수퍼마켓에 장보러 갈때 무엇을 사겠다고 종이에 적어 가지고 간 사람과 아무 작정없이 마켓 안을 어슬렁어슬렁 헤매는 사람은 걸음걸이부터가 다르다. 아무 목적없이 시장보는 것이 얼마나 시간낭비고 에너지소비인가는 누구나 실감할 것이다.

목표가 반드시 화려하고 거창할 필요는 없다. 가슴 설레는 내용이기만 하면 된다. 아프리카에 가서 선교봉사활동을 펴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자녀들과 함께 자기가 살고있는 주를 한번 횡단해 보는 것도 좋은 목표다.


1월은 1년의 시작이다. 누구나 365일이라는 시간을 똑같이 배급받게 된다. 이 365일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삶의 내용이 달라진다. 자신이 배급받은 시간에 삶의 의미를 채워 넣어야 시간의 모양이 생겨난다. 의미가 채워지지 않은 시간은 죽은 시간이다.

8.15 광복후 한국에서 정부가 밀가루를 무상배급해준 일이 있다. 이때 똑같은 양의 밀가루를 배급받아 왔는데 어느 집에서는 맛있는 저녁상이 차려지고 어느 집에서는 맛없는 저녁상이 차려지는 것을 나이드신 분들은 기억할 것이다. 같은 식량을 배급받아도 자신이 그것을 어떻게 요리하느냐의 솜씨에 따라 맛이 전혀 달라진다. 시간도 마찬가지다.

‘희망’이라는 단어가 넘쳐흐르는 1월이다. 12월에 가서 “돌아다보니 올해도 아무 한 일이 없네”하는 식으로 후회하지 않으려면 똑같이 배급받은 시간을 기다리는 삶으로 바꿀줄 아는 노력이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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