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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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교회를 보는 다른 시각

2001-01-1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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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와 사회.

최근 신문지상에 남가주 소재 한인교회들의 일년 예산이 공개되면서 적지 않은 우려와 비판의 소리가 들리고 있다. 그것은 한결같이 교회의 타락과 성직자의 부도덕 그리고 교회의 대 사회적인 일에 대한 무관심 등이다. 교회가 수백만 달러나 되는 예산을 교회내부에서만 사용하고 그것도 재정 감사도 없이 사치하는 일에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두가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교회에 대단히 관심이 많은 듯 하다.
그러나 이러한 관심과 비판은 교회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사정을 파악한 다음에 하는 것이 아니라 선입견적인 요소와 몰이해에서 발생한 것이 많기에 시각의 교정이 필요하리라 본다.

먼저, 대형교회 목사들은 모두 타락했다는 것과 따라서 대형교회는 타락의 선봉자라는 시각이다. 목사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먼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7년 혹은 그 이상의 훈련기간을 거친 후 개인과 가정생활에 문제가 없음을 입증한 다음에 안수를 받는다. 그리고 뼈를 깎는 듯한 고난과 연단의 시간들을 보내며 바쁘게 목회 활동에 전념해야 한다. 대부분의 대형 교회 목사들은 이러한 시간을 수십년 간 보내며 목회와 사회 봉사활동을 해왔으며 그러한 결과로 오늘날의 대형 교회를 이루었다. 이들은 교회와 사회에서 존경과 신뢰의 대상이 될지언정 결코 타락한 분들이 아니다. 교회와 목회자가 부도덕하고 불경건하며 사회와 세인으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면 어찌 그러한 교회가 부흥하여 대형교회가 될 수 있었단 말인가? 환자를 제대로 치료하지 않고 툭하면 의료사고가 터지며 의학적 지식이 없는 의사가 진료하는 곳에 환자가 몰리겠는가?

내가 한국에서 목회할 때 인근에 대형교회가 있었다. 5만명 정도 모이는 큰 교회이니 이곳의 교회들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 교회 담임목사와 교제할 시간이 있었는데 약 100여명의 신도를 목회하는 나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게 바쁘고 고달픈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하루에 4시간 이상 자는 일이 거의 없으며 차를 타고 갈 때에도 항상 휴대폰으로 교인들을 위로하다가 잠깐 잠깐 토막 잠을 자는 것이었다. 그런 생활을 30년간 하고 있다고 했다.


한번은 어떤 사람이 그 목사를 향해 비난하는 소리가 들렸다. 목사가 청빈하고 가난해야지 대형 승용차에 기사까지 두면 되겠냐는 것이었다. 나는 그가 소형 승용차를 손수 운전하며 다니는 것보다 그렇게 하는 것이 교회와 사회를 위하여 훨씬 이익이 있는 행동이라고 답해주었다. 자그마한 것에 신경을 쓰느라 역할을 제한 받기보다는 더 큰 것과 중요한 것을 생각하도록 배려해 주는 것이 더욱 생산적인 일일 것이라고 대답해 주었다.

크고 돈이 많으면 타락한 것이고 가난하면 거룩한 것이라는 사상은 잘못된 것이다. 부자도 거룩할 수 있으며 빈자도 사악할 수 있다. 문제는 자세이지 가진 것과 누리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대형 교회는 타락하지 않았다. 대형교회에서 목회 하는 목사도 마찬가지다. 대형 교회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더욱 잘하도록 자그마한 시각의 교정이 필요할 뿐이다.

둘째로, 교회의 대 사회적인 봉사활동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성경에는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교회는 선교와 봉사활동을 조용하고 은밀하게 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잘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는 교회에서의 구제와 봉사 활동이 정지된다면 아마 사회적으로도 큰 혼란이 일어날 것이다. 오늘날 교회는 정부나 사회단체 혹은 다른 민간기구가 하지 못하는 수많은 일들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교회가 하는 일들을 잘 모르고 있다.

이제 두 가지가 필요할 것이다. 교회는 앞으로 나팔을 불면서 일하던지 아니면 모든 사회인들은 교회가 하는 일에 더욱 관심을 가지든지 말이다.
마지막으로, 교회내부 특히 대부분의 교회들을 대표할 수 있는 대형 교회의 내부에서 외부를 바라보는 시각의 교정이 필요하다. 세인들은 더 이상 당신들의 교화와 교육의 대상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오히려 세인들은 영특한 지혜로 당신들을 바라보고 있으며 당신들의 삶과 태도에서 경건함과 거룩함을 기대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우리가 타락하지 않았으며 바른 길로 가고 있다고 자부하더라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면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세인들의 질타와 따가운 눈초리를 겸허하게 회개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더 높은 도덕적 이상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이제 교회는 연못 속의 물고기가 아니라 어항 속의 물고기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교회는 구름 속에 있는 것도 아니고 땅속에 있는 것도 아니라 땅위에 있으면서 하늘을 선포하는 곳이다. 하늘을 바라보되 어울릴 이웃이 없다면 교회의 존재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이웃을 잃으면 하늘도 바랄 수 없음을 알고 이웃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좋은 이웃이 될것이며 이웃 또한 교회를 조용히 바라볼 줄 알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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